28페이지 내용 : 예술가는 죽기 전까지 완벽을 열망한다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정년이 의 인기로 덩달아 주목받은 공연이 있다 세종문화회관 컨템퍼러리 시즌SYNC NEXT 24에 선보인 조 도깨비 영숙 2024/07/26-07/27, 세종문화회관S씨어터 이다. 이 공연의 출발점이 드라마 정년이 였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미처 공연을 보지 못한 관객의 궁금증도 덩달아 커졌다. 조 도깨비 영숙 은 장영규·박민희 음악감독의 공동 연출로 여성국극1세대 명인 조영숙b.1934을 조명한 작품이다. 박민희 감독이 장영규 감독과 조영숙 명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23년 봄. 드라마 정년이 에 창작진으로 참여한 두 사람이 여성국극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자 서울 성북구에 있는 조영숙 명인의 집을 찾았다. 여성국극을 소재로 시각예술 작업을 해온 정은영 작가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선생님이 굉장히 연로하셔서 기운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보니 제 편견이더라고요.” 박민희 감독이 떠올린 조영숙 명인과의 첫 만남이다. 세 사람의 대화는 첫 만남부터4시간 넘게 이어질 정도로 뜨거웠다. 그동안 소외된 여성국극을 조명하는 콘텐츠 제작 소식에 조영숙 명인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살아온 여정부터 여성국극에 대한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꺼냈다. 국가무형유산 ‘가곡’ 이수자인 박민희 감독에게 조영숙 명인은 전통음악 예술가의 길을 개척해온 선배였다. 국악이라는 ‘제도권’에서 벗어나 과거 대중예술로 사랑받은 여성국극 배우로 시대를 풍미한 스타이기도 했다. 조영숙 명인과의 여러 차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명인의 삶과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어졌다. “아무 계획도 없을 때부터 ‘선생님, 제가 선생님 공연도 만들어드리고 음반도 만들어드릴게요’라고 호언장담을 했죠.” 웃음 호언장담은 현실이 됐다. 장영규 감독이 지난해 연말 세종문화회관으로부터 SYNC NEXT 참여를 제안받으면서다. “장영규 감독님과 ‘국악을 전공했으나 대중음악가로 살았던 과거의 스타’를 조명하는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나눈 적 있어요. 조영숙 선생님이 딱 그 주인공이었죠. 선생님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에 ‘뭐든지 다 하겠다’며 기뻐하셨어요.” 정년이 로 맺어진 세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공연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조영숙 명인의 인생 전반을 공연으로 조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은 여성국극 선화공주 였다. 조영숙 명인이 꼭 한번 다시 해 보고 싶다고 꼽은 작품이다. 여성국극을 과거의 형식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영상과 전자음악, 서양 정장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지금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예술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완성된 공연은 총4장으로 구성된다. 그중1장은 조영숙 명인이1인5역으로 연기하는 선화공주 영상으로 꾸며진다. 실제 여성국극 공연에서 사용한 의상을 조영숙 명인이 일일이 수선해서 입고 촬영한 것이다. 촬영 기간은 단 이틀. 공연을 통해 만난 조영숙 명인의1인5역 연기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26
29페이지 내용 : 그러나 조영숙 명인은 완성된 영상에 만족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영상을 보시더니 ‘더 잘할 수 있다’며 다시 촬영하면 안 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예술가는 죽기 전까지 완벽을 열망한다’는 말이 떠올랐어요.90대에도 예술가로서의 이상향을 위해 완벽을 추구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정말 놀랍고 멋있었어요.” 운명 같은 만남도 있었다. 여성국극 분장을 위해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에 참여한 이동민 분장 디자이너를 섭외했는데, 알고보니 그의 모친이 조영숙 명인과 여성국극 배우로 함께 활동한 김경애 명인이었던 것. 박민희 감독은 “선생님이 이동민 디자이너를 만난 뒤 ‘내가 경애 언니 딸을 만나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조 도깨비 영숙 을 통해 박민희 감독은 여성국극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는 “여성이 다양한 배역을 자유롭게 맡는 것”, 그리고 “연기와 대사의 과장된 화려함”을 여성국극의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박민희 감독은 “전통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머금고 흘러가는 것”이라며, “여성국극도 지금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 개선할 부분은 개선하며 과거의 유산이 아닌 지금과 호흡하는 예술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대 때는40대가 넘어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여성 선배는 왜 드물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저도 나이가 들어보니 한국에서 여성 창작자로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선배 세대가 사라지고 싶어서 사라진 게 아니라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을 때 조영숙 선생님을 만났죠. 선생님은 저보다 몇 세대를 뛰어넘은 여성 선배이면서도 여전히 열정이 활활 타올라요. 이런 여성 창작자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이들이 알면 좋겠어요.” 장병호는 이데일리 문화부 기자로, 공연계에 관한 애정을 갖고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있다. 텅 빈 아카이브의 역동하는 미래 지난여름, 혹독한 더위 속에서 조 도깨비 영숙 을 관극했다.2024년7월26일과 27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S씨어터에서 단2회 공연한 이 작품은 ‘여성국극女性國劇’ 1세대 남역 배우이자 ‘산마이’ 남성 조역으로 웃음을 이끄는 배역 역할의 대표 격인, 조영숙 선생과 그 제자들이 출연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작품이었다.1934년생 90세의 조영숙 선생은 거의 한 세기를 가깝게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이 투영해낸 여성국극을 향한 진심과 열광, 그리고 축제를 관객에게 선사했고, 객석의 관객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박민희와 제작 팀 모두의, 노배우의 삶과 예술을 향한 존중을 원칙으로 한 세심한 구성과 연출의 힘이기도 했다. 공연 직후, 관객에게 인사하기 위해 로비로 나온 조영숙 선생에게 더 가까이 눈을 맞추려는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