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페이지 내용 : 젊은 관객이 길게 줄을 늘어서는 광경을 보며 뛸 듯이 기뻤지만, 동시에 한없이 슬픈 양가적 감정에 휩싸였다. 구순의 노배우와20-30대 젊은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60-70년이라는 뻥 뚫린 시간의 공백, 시대와 역사로부터 완전히 소외됐던 그 공백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웹툰에서 드라마로 이어진 정년이 효과가 여성국극을 향한 초미의 관심사를 불러낸 지금은 더 많은 이들이 여성국극의 존재를 인지하게 됐고, 거짓말처럼 그 공백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2008년, 한 선배의 여성국극 연구 인터뷰를 보조하기 위해 따라나섰던 당시의 무지와 외면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덕분에 여전히 생존해 계신 여성국극 배우들은 지난 몇 달간 예상치 못했던 관심과 호명에 말년의 삶이 모처럼 활기로 가득하고 행복하신 듯하다. 반면, 인생에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미처 누리지 못하고 돌아가신 여러 선생님을 떠올리면 그저 야속한 세월을 탓할 뿐이다. 여성국극은1948년에 상연된 여성국악동호회의 옥중화 가 효시로 알려져왔다. 전통국악 연희의 서구화된 양상이자 판소리를 분창화分唱化・장면화場面化해 연극적으로 무대화한 ‘창극唱劇’의 한 종류이고, 오직 여성 배우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국극은 매우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관습 내에서 전례 없이 독자적이고 전복적인 공연의 형식을 발명했다는 공적이 있다. 하지만 그 역사적 명운은 그리 길지 못했다.6.25 전쟁 당시에도 피난하며 공연을 지속했고, 전후 한국의 흥행사에 길이 남을 대중적 인기를 얻었음에도 고작20여 년가량 짧은 역사만을 남긴 채, 여성국극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1세대 배우 대부분은 자신들의 무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 미처 수습할 새 없이 삶과 예술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 후대를 향한 교육이나 역사적 기록 같은 것들 또한 충실히 남겨질 리 만무했다.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모두 격동하는 시대의 변화를 미처 읽어내지 못함으로써, 여성국극 무대는 거의 명맥이 끊긴 상태로 과거 세대의 기억 속 향수 어린 일화로만 전해지는 비운의 장르로 남았다. 나는 현대미술 작가로서, 여성국극을 하나의 ‘민족지’로 삼아 젠더 관점을 적용해 조사・연구하고, 이 배제된 역사의 다른 해석과 쓰기를 고민하는 ‘여성국극 프로젝트’ 2008- 현재 라는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연구 초반,1세대 배우들을 한분 한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이어가던 때가 생각난다. 그야말로 “돈을 갈퀴로 쓸어 모으던 시절”,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들의 놀랍도록 활기차고 흥미진진한 일화를 신나게 듣고 나면, 어느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 있기 일쑤였다. 임신 중에 무대에서 낙상했음에도 오직 남역을 수행하는 것에 집중한 터라 임신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는 조금앵 선생의 기억이나, 더 나쁜 남자로 보이기 위한 참신한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이소자 선생의 열정 어린 일화, 남역에 몰입하면 가슴도 작아진다고 주장하던 조영숙 선생의 이론 등등… 도통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의하고 감화하던 나날은 그간 어렵게 공부하던 서구의 수많은 ‘젠더 이론’이 단박에 말끔히 이해되던 새로운 배움의 나날이기도 했다. 마치 방금 일어난 일인 양, 선명하기 이를 데 없는 먼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노인들의 목소리엔 늘 자부심과 열의가 담겨 있었지만, 이내 후회와 회한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았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당신들 과거의 무지와 교만을28
31페이지 내용 : 29 여성국극1세대 조영숙 명인이 간직한 그 시절의 열정과 열망을 조망한 조 도깨비 영숙 은2024년 말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 부문 최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