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페이지 내용 : 창극을 제작하는 데 가장 어려운 일은 원작 웹툰의 엄청난 분량과 서사를2시간 내외로 압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어려움을 넘어서 다양한 기대를 하게 했다. 웹툰을 보며 상상하던 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들으며 관객이 느낄 전율에 대해 확신을 가졌고, 또 그것을 만들어내겠다는 도전 의식을 다지게 했다. 국립창극단만이 가진 소리와 연주, 앙상블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은 극복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아찔함까지 느낀 난관도 있었다. 원작의 주요 인물인 캐릭터를 남성 배우가 소화한다는 것에 대한 원작 팬들의 민원이 그 시작이었다. 사실 여성국극이 그 시대에 공연예술로 여성 관객에게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 속 남성 캐릭터의 매력을 여성 배우가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하면서 이중·삼중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데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무대에 오르는 남성 배우가 이야기 속 여성 캐릭터를 ‘더욱 여성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시대의 관객이 느낀 다중적 감각과 카타르시스의 기회를 전하고 싶었다. 배우는 의도한 바를 잘 연기했고, 캐스팅은 바뀌지 않았다.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국립창극단 창단 이래 전례 없는 매진과 추가 공연까지 순식간에 매진되는 사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 기간 기존 창극 관객과는 전혀 다른 관객층이 연일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시기와 질투 가득한 여성 서사가 아닌,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경쟁하고 의지하고 함께 성장하는 여성 서사를 보기 위해, 전쟁과 국가 재건이라는 역사 속에 사라진 여성들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던 여성의 설움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소리를 듣기 위해. 여성들의 보잘것없는 공연으로 치부하며 여성국극의 정체성마저 부정한 과거를 가진 국립창극단으로, 오늘의 관객이 모여들었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매 공연 감동의 물결로 충만했고, 개막한 뒤에는 전에 없던 자존감으로 사기가 진작된 것은 물론이다. 물론 그런 현상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필자는20여 년 전 여성 서사의 무대가 전무하던 시대에 가부장적 사회에서 추방당했으나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가믄장아기 2003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나는 사회가 스스로 변하고 있다고 느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웹툰 정년이 에서, 창극 정년이 에서, 드라마 정년이 에서 독자와 관객과 시청자가 열렬히 반응하는 것은1950년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회 속 여성의 모습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하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여성국극이 가진 예술·문화·사회적 영향을 지금의 새로운 예술적 형태로 변화시키면서 부활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창극 정년이 의 극중극 자명고 에서 호동 왕자와 고구려 군인들이 함께 부르는 노랫말처럼 이제 혐오와 차별이 아닌 이해와 존중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 죽음이 아닌 살림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을 꿈꾸며, 새로운 시대, 왕자들의 귀환을 환영한다. 남인우는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이자 상임연출이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문화예술 교육진흥원·서울문화재단 이사를 역임했고, 대표작으로 창극 정년이 2023 , 우리 어매 2023 , 연극 나자딘을 위한 인터뷰 2022 , 하지맞이 놀굿풀굿 2020 , 청소년극 소년이 그랬다 2021 외 다수가 있다.32
35페이지 내용 : 새 얼굴의 기쁨, 낯익음의 정취 해가 저물어가는 이맘때. 으레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때로는 냉정하고 다정 하게 지난날을 위로해본다. 세종문화 회관의 생동하는 현재, 서울시예술단 에도 연말은 여느 때보다 관객과 부지 런히 만나는 시간이었다. 상반기 대표 레퍼토리 일무 를 재공연한 서울시무 용단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두 안무 가가 화합을 이룬 국수호·김재덕의 사계 로 하반기를 장식했다. 중규모의 M씨어터 무대에 정갈하게 펼쳐진 사계 절은 유려한 움직임으로 순환하는 자연 과 영원한 시간의 의미를 상기했다. 고 선웅 단장의 지휘 아래 일 년간 네 편의 작품을 선보인 서울시극단은 ‘포기하지 말고 살아내라’는 메시지를 담은 퉁소 소리 를 이번 시즌 마지막 무대로 올렸 다. 고선웅 연출이 스스로 “15년 동안 무 대화를 꿈꿨다”고 애정을 드러낸 이 작 품은 그만의 색깔을 담뿍 머금고 우리 시대, 연극의 역할을 되새기게 했다. 한 편, 스타 캐스팅으로 연일 화제를 모은 서울시오페라단은 찬 바람 부는 겨울이 면 떠오르는 오페라, 푸치니 라 보엠 을 작곡가 서거 100주년에 기해 공연 했다. 너무나 대중적인 오페라지만 창 단 이래 처음 무대에 올린 레퍼토리라는 점, 한겨울이 아닌 늦가을에 선보였다 는 점,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넓은 스펙 트럼의 성악가들을 두루 기용했다는 점 에서 주목받았다. 끝으로 서울시뮤지컬 단은 지난해 초연해 호평받은 맥베스 를 재공연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지 난봄, 신예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더 트 라이브 , 대표 레퍼토리로 등극한 다 시, 봄 의 기세를 몰아간 것. 서울시예술 단이 펼쳐놓은 생생한 오늘의 예술, 그 순간을 기억하고자 2024년 하반기를 장식한 네 편의 공연 현장을 여기에 기 록한다. review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