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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페이지 내용 : 지난 11월, 서울시오페라단 39년 역사 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이 처음 으로 공연되었다. 사랑스럽고도 감미로 운 매력을 지닌 이 오페라가 푸치니 서 거 100주기를 맞이해서야 서울시오페 라단 레퍼토리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여타 국공립 오페라 단과는 차별되는 지점을 꾸준히 모색해 온 서울시오페라단의 개성으로 미뤄봤 을 때,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이 작품의 특성이 오페라단의 결과 맞지 않 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팬 데믹 이후 또다시 변화하고 있는 서울시 오페라단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한꺼번 에 잡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1985년 창단부터 여러 국내 초연과 화제작을 선 보인 서울시오페라단의 이러한 최근 행 보가 다시금 대한민국 오페라계의 이목 을 집중시키고 있다. 라 트라비아타- 춘희 04/25-04/28 로 시작해 야외 오 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06/11- 06/12 와 토스카 09/05-09/08 를 거쳐 라 보엠 에 이르기까지, 서울시 오페라단은 올 한 해 계획한 주요 라인 업을 모두 성황리에 마쳤다. 필자는 11월 22일과 23일, 각기 다른 출연진의 공연을 양일간 관람했다. 서 울시오페라단의 변모를 중심으로 이번 라 보엠 을 살펴보면, 먼저 대중성 측 면에서 환상적인 무대를 말하고자 한 다. 막이 오르기 전, 두터운 장서가 꽂힌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드는 손이 나 타난다. 프로젝션 매핑 기법을 활용한 이 도입부는 아마도 작품의 원작이 ‘보 헤미안의 생활 정경’이라는 프랑스 장편 소설이라는 것에 착안한 듯하다. 책이 뽑힌 자리는 한때 뜨거웠던 젊은 날의 사랑처럼 타오르며 관객을 19세기 파리 의 다락방으로 데려갔다. 이번 프로덕션은 특별한 레지테아터 없 이 고전적 라 보엠 그 자체로 공연됐 다. 엄숙정 연출은 가난한 주인공들의 다락방 다만 춥고 남루한 공간이라기엔 지나치게 환하고 쾌적해 보였다 과 화 려함이 넘실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파 리, 새벽 눈발이 날리는 파리의 외곽 등 등 라 보엠 을 떠올리면 그려지는 이미 지 안에서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 다. 무대와 의상 등이 원작의 공식을 그 대로 따르는 대신, 연출가는 섬세한 변 화를 추구했다. 무대 위 인물의 설레는 감정이 크리스마스이브의 흥겨움과 그 대로 이어지도록 1막과 2막을 자연스 럽게 연결했다. 미미와 로돌포가 사랑 의 이중창을 부르는 동안 그들 뒤에는 휘황찬란한 거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주인공들은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마치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합쳐지는 영 화처럼 입체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 날 객석의 탄성을 불러온 2막 무대는 풍 서울시 오페라단의 유의미한 도약 글. 손수연 오페라평론가, 단국대학교 교수 38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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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페이지 내용 : 부한 색감을 배경으로 다양한 군상이 촘 촘하게 표현됐는데, 크리스마스 장식을 두른 거대한 인형과 서커스까지 동원되 며 꿈같은 환상을 선사했다. 카페 모뮈 스 근처의 파리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 사실성을 높이고 오페라를 감상하는 재 미 또한 더했다. 크게는 원작의 전통을 따라가면서 세부적인 부분에서 고유한 해석을 드러낸 방식은 오페라를 처음 접 하거나 스산한 겨울의 초입에서 작품을 부담 없이 즐기고자 하는 관객에게 장르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더해 작품의 예술성 또한 함께 가져가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던 것은 캐스팅과 오케스트라였 다. 우리나라 오페라에서 A와 B로 공연 팀을 나눌 때는 어느 한 팀의 캐스팅에 방점을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요사이 서울시오페라단은 그런 관례에 서 벗어나 A·B팀 모두 서로 다른 개성 과 실력을 겸비한 성악가들로 채우고 있 다. 즉,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두 팀 의 공연이 전부 궁금하도록 캐스팅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무대 경험이 풍부하 고 노련한 출연진과 세계 유수의 콩쿠르 에서 최근 우승하는 등 국내 오페라 데 뷔 무대인 신예가 골고루 포진해 사뭇 다른 조합과 색깔을 보여줬다. 미미의 경우만 봐도 해당 역할로 정평이 난 서선영 소프라노와 새롭게 도전하는 황수미 소프라노의 공연이 모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황수미의 경우 리 릭 레지에로lyric-leggiero로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터라 더욱 주목을 받았 다. 현재 우리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주 목받는 소프라노들의 공연은 결과적으 로 두 사람 모두 성공이었다고 본다. 서 선영은 특유의 풍부한 성량과 따스한 질 감으로, 황수미는 청량하면서도 유연한 가창으로 청순한 여주인공의 매력을 잘 살렸다. 사랑과 이별, 죽음으로 이어지 는 미미의 애절한 모습도 나름의 연기로 각기 잘 표현했다. 이번 오페라에서는 마르첼로 역할을 맡 은 성악가들도 상당히 화제에 올랐다. 근래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한 국내 오페 라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바리톤 이 승왕은 현대 오페라 가수의 모범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빼어난 가창과 연기력 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지 난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에 빛 나는 김태한은 다소 긴장한 감은 있지 만 약관을 갓 넘긴 나이에 우아한 음색 으로 풋풋한 마르첼로를 들려줬다. 이 밖에도 무제타를 노래한 소프라노 김유 미, 쇼나르의 바리톤 박성환, 콜리네 역 의 베이스 이준석·정인호 또한 적극적 인 연기와 적절한 가창으로 라 보엠 에 필수적인 앙상블을 훌륭히 완성했다. 지휘자 최희준이 이끄는 국립심포니오 케스트라는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 는 연주로 오페라 반주가 아닌 오케스트 라 자체만으로 하나의 음악극을 완성했 다. 각 파트의 유려한 움직임과 강약 조 절 등이 일품이었다. 다만, 최희준의 지 휘가 무대 위 성악가와의 음악적 호흡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때때로 관현악은 달려 나가고 성악가는 뒤처져 따라가는 듯한 모양새가 느껴지지는 않 았을 것이다. 이처럼 서울시오페라단은 라 보엠 에 서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 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다. 오페라 초보 자에게는 보는 재미를, 숙련된 오페라 팬에게는 음악적 감동을 선사한 공연으 로 평가한다. 서울시오페라단 라 보엠 2024 ⁄ 11 ⁄ 21-11 ⁄ 24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review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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