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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페이지 내용 : 독일 부퍼탈& 탄츠테아터 부퍼탈 2008년 인구 35만의 독일 부퍼탈시 는 안무가 피나 바유슈를 명예시민 으로 임명했다. 바우슈는 “나는 부퍼 탈에 사는 게 좋다. 무용단 사무실 앞 눈높이에 현수교가 지나간다. 여기 는 일요일의 도시가 아니라 일상의 도시로 내 도시가 됐다. 나와 무용단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답했 다. 그리고 이듬해 부퍼탈에서 눈을 감았다. 부퍼탈과 바우슈는 불가분의 관계였 다.1970년대 초반부터 춤과 연극이 공생하는 ‘탄츠테아터tanztheater’를 내 세운 그는 33세 나이로 부퍼탈 시립 발레Opernhaus Wuppertal ballet 감독에 취임했고, 이후 단체 이름도 탄츠테 아터 부퍼탈Tanztheater Wuppertal로 바 꿨다. 처음엔 기존 취향에 젖어 있던 부퍼탈 관객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 다. 전임 부퍼탈 시립극장장은 클래 식 발레를 주로 공연했고,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특정한 무용 미학을 시민에게 보여주리라는 기대가 있던 곳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전하는 것 은, 도시 행정이 예술감독을 믿어주 지 않는 한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실 제로 바우슈의 부퍼탈 임기 초반 쏟 아진 야유가 심심치 않았고, 심지어 경호원을 데리고 극장을 드나들어야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바우슈는 부퍼탈 시민 의 삶을 관찰하며 차츰 지역에 스며 들었다. 연습장을 오가며 만난, 슬프 고 피곤한 표정을 한 시민의 심신 상 태가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공습으로 파괴된 상태에 머물러 있 음을 간파해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 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시 키는 작품으로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전후 복구 사 업으로 공원·동물원을 지은 부퍼탈 시는 바우슈의 공연에 관객이 몰리 면서 탄츠테아터의 번성으로 도시 재생을 완결하게 된다. 피나 바우슈는 본거지와 투어를 연 결하는 코드로 ‘도시-국가’를 끄집 어냈다. 무용단이 로마에 머물며 만 든 빅토르Viktor 1986부터 인도 콜 카타 배경의 뱀부 블루스Bamboo Blues 2007까지, 예술적 근거지를 부 퍼탈에 두면서 무용수들과 여행 일 기를 쓰듯 세계를 다니며 영감을 얻 어 신작을 내놓는 ‘도시-국가 프로젝 트’를 이어갔다. 2005년 한국에서 초연한 러프 컷 도 시리즈의 일환이다. 역삼동 시절 의 LG아트센터를 비롯해, 이탈리아 팔레르모·스페인 마드리드·오스트 리아 빈·미국 LA ·홍콩·헝가리 부 다페스트·브라질 브라질리아가 자 신의 지역 공연장의 브랜드를 제고 하는 데 바우슈의 명성을 썼다. 연작 에서 인간 소외를 중점 제재로 놓고 제작 배경만 바뀌는 형태로 인해 비 판받기도 했지만, ‘피나 바우슈’를 교 양으로 인식하는 관객이 대도시에 얼마나 있는지를 세계 투어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바우슈 사후 도시-국 가를 매개로 한 세계 수준의 창작은 무용 분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부퍼탈 샤우슈필 전경 ©Frank Vincentz 피나 바우슈 안무 카네이션 ©Oliver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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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페이지 내용 : 서울은 누구와 손잡을 것인가 유럽 대도시가 발레 제작을 후원하 는 모델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방 정부와 지역 예술위원회가 예산과 보조금을 단체에 지원하고, 기획 공 연에 관객층을 늘리고,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다수당의 안정적 지원 방 침을 정무적으로 관리하는 형태는 국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발레 향 유 계층을 늘려야 한다”는 명제를 당 위 목표로, 당국이 티켓 가격 설정에 일정 부분 개입한다. 반면, 해외의 많 은 사례는 발레단 재정 기반을 고려 할 때, 일정 부분 ‘엘리트 예술’, ‘부자 예술’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티켓 가격을 설정하는 데 부호의 조력을 유인할 여지를 허용한다. 20세기 중반까지 클래식 발레가 세 계적으로 다수 관객을 끌어들였지 만, 컨템퍼러리 발레·현대무용 기반 의 공적 무용조직은 광범위한 대중 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발란신·로빈 스의 창작물이 기반이 된 뉴욕을 넘 어 로열 발레·마린스키 발레·파리 오페라 발레·오스트레일리아 발레 의 정규 레퍼토리로 안착하기까지, 뉴욕이 안무가들을 품고 있던 절대 적인 시간이 없었다면 이들의 작품 을 지금처럼 후대가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프로덕션 이나 안무가를 단기적 관점으로 평 정하고 전망하는 작업에 유의해야 할 근거다. 서울시발레단이 2024년 10월 공연 한 더블 빌 한스 판 마넨×차진엽 은 일반적으로 입증된 작품에 신작 을 끼워 넣어 위험을 분산하는 유럽 과 미국의 방식을 따랐다. 흡사, 라트 만스키가 ABT에서 역사적으로 공 인된 파리의 불꽃 과 신작 맑은 시 냇물The Bright Stream 을 페어링하는 방식이다. 결국 신생 공공 발레조직 의 국제적 명성은 안무가와 무용수 의 재능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렸 다. 서울시발레단은 21세기 중반을 가늠하면서 발레 안무를 재정의하 고 춤의 극·심리적 서사가 얼마나 동 시대 한국인의 정신과 상통하는지에 예술적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본다. 중기적으론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와 롤랑 프티Roland Petit처럼 발레 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거나, 포사 이스처럼 해체주의적 접근으로 발레 전통이 고정되지 않은 점을 역설할 작가주의적 안무가를 폭넓게 탐색해 야 할 것이다. 서유럽 발레 전통이 한 국에 어떻게 유입되고 시대·지역적 요구에 맞춰 재해석되는 선구 모델 로 쿠바의 사례를 살피는 것도 적절 하다. 강렬하고 독특한 민속무용과 서구의 발레 스타일을 신중하게 혼 합해 영국을 중심으로 주목받은 쿠 바 발레를 한국 발레 생태계가 제대 로 조명한 경우가 없다. 특정 안무가 의 생산기지로서의 오페라하우스· 아트센터를 관광 자원화하고자 한 시도도 있었지만 존 노이마이어의 함부르크 극장 케이스처럼 대부분 실패했다. 발레는 각종 위기에 능동적으로 반 응해온, 탄력성이 있는 진화된 예술 형태지만 결국 공립 발레단의 지속 여부는 예술가를 개발하고 육성하는 방식이 얼마나 세련되느냐에 달렸 다. 서울의 공립 발레 제작은 예술적 으로, 또 재무적으로 누구와 손잡을 것인지 판단이 우리 앞에 놓였다. report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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