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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페이지 내용 : 토리·즉흥·파트너링 등 제가 따라 가지 못할 만큼 춤이 너무나 다양했 어요. 물론 그 모든 수업을 따라가는 게 쉽지는 않았죠. 웃음 선생님들 이 용기를 많이 북돋아주셨고요. 그런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마르세유 발레 오디션이 가장 큰 계 기였어요. 몇 차에 걸쳐 진행됐는데, 참가자가 300명쯤 됐거든요. 일찍 이 떨어질 줄 알았던 제가 계속해서 다음 단계를 통과하고 있더라고요.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 점점 내려놓 고 춤을 추는데, 그 과정에서 내 몸이 이런 표현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섬세 하게 인식하게 됐어요. 점차 클래식 발레를 추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요. 아쉬움을 느낄 새가 없었어요. 항상 새로운 것이 주어졌고, 저는 그걸 무 대 위에서 해내야 했죠. ‘클래식 발레 를 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나 후회, 미련이 들 때면 언제나 이미 새 로운 것이 주어져 있었죠. 웃음 비로소 춤을 즐기게 되기까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한 마르세 유 발레는 롤랑 프티가 창단한 단체예 요. 현재는 좀 더 컨템퍼러리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고 있지요. 제가 활동할 때는 변화의 경계에 있 었던 것 같아요. 클래식 레퍼토리를 지키기보다는 모던 발레 레퍼토리가 많이 포함됐죠.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 같은 안무가의 작품이 꼭 포 함됐고요. 저는 프레데리크 플라망 Frédéric Flamand이라는 벨기에 출신 감 독님이 계실 때 입단했고, 이후 에미 오 그레코Emio Greco 감독님과도 작업 했어요. 두 분의 스타일, 춤의 색깔이 너무나 달랐어요. 물론 여러 스타일 을 병행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요. 마르세유에서 발견한 내 춤의 강점은 무 엇이었나요. 하물며 즉흥을 하더라도 토슈즈를 신고 추는 역할은 항상 제게 주어졌 어요. 무대에서 제가 가장 잘했죠. 에미오 그레코와 피터 숄텐Pieter C. Scholten의 Extremalism 이라는 작 품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에미오 그레코&피터 숄텐은 이미 2000 년대부터 국내에도 소개된 안무가죠. 무 용수로서 함께 작업한 소감이 궁금해요. 일단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클 래식 발레 테크닉이 굉장히 탄탄해 야 해요. 안무가가 그 점을 중요하게 강조하기도 하고, 그래서 늘 발레 클 래스를 하죠. 또 신체 능력을 극한까 지 끌어올리는 편이에요. 그가 발레 단 감독으로 있을 당시 제 춤 스타일 도 많이 바뀌었죠. 솔직히 그때는 너 무 힘들었는데, 일 년 반쯤 지나니 춤 에 들어가는 힘이 빠지면서 조금씩 편해지더라고요. 비스바덴 발레는 어땠나요. 마르세유에 서 5년을 보내고 학창 시절 기억이 있는 독일로 향한 셈이네요. 동료들이 비스바덴 발레에 있기도 했고, 발레단 레퍼토리의 스펙트럼 이 상당했어요. 마르세유 발레의 레 퍼토리는 에미오 그레코의 작품이 대부분인데, 비스바덴은 ‘한 시즌에 이게 모두 가능하다고?’ 할 만큼 다양 했죠. 순전히 레퍼토리에 끌려서 가 게 됐어요. 그곳에서는 스스로를 훈 련하거나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할 틈 이 없었어요. 빠르게 작품을 소화해 내야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무용수 도 그렇고 작품의 퀄리티도 꾸준히 발전할 수밖에 없어요. 드라마가 필 요한 작품, 또 오하드 나하린 같은 거 장의 작품 등 그 많은 작품을 전부 경 험해볼 수 있다는 게 의미가 있었죠. 이전까지는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데 집중했다면, 이때는 춤을 좀 다르 게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거장으로 불리는 오하드 나하린은 어떤 예술가였나요. Sadeh21 은 바체바 댄스 컴퍼니 Batsheva Dance Company에서 2011년 초 연한 작품인데, 바체바 외에 다른 무 용단체로는 저희가 처음 공연하는 거였어요. 유럽에 공연권이 풀리는 첫 시기였는데, 그런 만큼 부담이 상 당했죠. 바체바 댄스 컴퍼니를 위한 작품이고, 타 단체에게 처음 공연을 허가한 것이니까요. 저희가 잘하지 못하면 작품이 생명력을 잃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어 요. 저는 아직 큰 부상을 겪어본 적이 없는데, 오하드 나하린의 안무는 굉 장히 격렬해서 무용수들이 상당히 무리하며 연습한 기억이 나요. 그렇 게 공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정작 무대에선 너무나 안정적이었어 요. 무용수 간 연결도 끈끈했고, 관객 과도 깊은 교류가 이뤄진다는 느낌 이 강하게 들었죠. 안무가는 인위적 으로 꾸며내는 것을 상당히 경계했 어요. 공연을 앞두고 무용수들의 모 습을 보면서 부자연스럽다고 여기 는 움직임을 전부 바꾸더라고요. 안 무가의 움직임과 무용수의 움직임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걸 똑같이 수 행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렇게 20년 가까이 해외에서 공부하고 활동했으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 쉬웠을 법도 한데요. 팬데믹 당시 함께 활동한 무용수들 이 많이 퇴단했어요. 비스바덴 발레 에서의 마지막 시즌은 변화가 컸죠. 어린 무용수들도 새롭게 많이 입단 했고요. 환경이 변화하니 생각이 많 아지더라고요. 할 만큼 한 것 같다는 생각도 컸어요. 욕심과 열정으로 가 득했던 예전과 달리 오히려 좀 편안 한 기분도 들고요. 다들 한국에 가서 뭐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저 는 특별한 목표나 뜻이 없었어요. ‘가 보면 알겠지.’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죠. 불안감, 조바 심보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여러 안무가를 만나며 끊임없이 변화해 온, 그 가운데 서울에 도착한 ‘이지영의 춤’이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인제 와 느끼는 건, 저는 춤추는 걸 정 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발레에서 비 롯하는 발랄함이 좋고, 다른 춤을 출 때도 기분이 좋고, 그냥 혼자 몸을 자 유롭게 움직이기만 해도 좋아요. 여 러 발레단에서 정말 많은 레퍼토리 를 추면서 매 순간 너무나 몰입해서 인지 지금은 오히려 춤에 미련이 남 지 않더라고요. 편안하게 춤출 수 있 다는 안정감이 들어요. 비로소 춤을 즐길 수 있게 됐죠. 56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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