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페이지 내용 : 백남준아트센터 NAM JUNE PAIK ART CENTER 백남준의 유산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백 남준 전문 미술관. 총 5,600m2 규모의 지상 3층, 지하 2층으로 구성되며, 비디 오아트·퍼포먼스·실험음악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로비에 들어서면 풀 밭에 텔레비전이 꽃송이처럼 피어 있는 TV 정원 이 맞이한다. TV 화면에는 세 계 각국의 여러 음악과 춤을 엮은 글로 벌 그루브 가 송출되며, 기술과 자연이 공존하며 유기적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또한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된 칭기즈 칸의 복권 , 다수의 로봇 시리 즈, 뉴욕 브룸Broome 스트리트 스튜디오 를 재현한 메모라빌리아 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백남준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되짚는 전시 《전지적 백남준 시점》 -2026/02/22 이 열리고 있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MMCA GWACHEON 백남준의 최대 규모 작품 다다익선 이 설치된 장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 념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의뢰한 작품으 로, TV 모니터 1,003대로 쌓은 18.5m 높이의 탑이다. 미술관 중앙 램프 코어 에 설치돼 경사로를 오르며 작품을 다각 도로 감상할 수 있다. 모니터에는4채널 로 영상이 상영되는데, 경복궁·부채춤· 고려청자 등 한국 전통문화부터 세계 의 랜드마크,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의 연주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브라운관 TV 의 노후화 3년간의 복원 프로젝트 끝에 2022년부터 재가동을 시작했다. 현재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2-4시 사 이에 가동한다. 경기 과천시 광명로 313 세종문화회관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 양편에는 백 남준의 호랑이는 살아있다 가 설치돼 있다.2000년 임진각에서 진행된 ‘DMZ 2000-새천년통일기원제’에서 공개한 작품으로, 호랑이처럼 강하고 자신 있 게 새천년을 맞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2001년 세종문화회관이 재개관을 기념 해 로비에 영구 설치했다. 첼로 서양 와 월금 동양 을 형상화한 약6m크기의 작 품으로 구성된다. 백남준은 생전 스스 로를 서구 한복판에 떨어진 호랑이라고 지칭하곤 했다. 작품에는 호랑이의 이 미지와 백남준이 ‘금강에 살으리랏다’를 부르는 장면, 이념으로 분단된 철조망 을 불태우는 장면 등으로 구성된 45분 가량의 영상이 나온다. 작품은 대극장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로비에서 자유롭 게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대전시립미술관 DAEJEON MUSEUM OF ART 대전시립미술관은 309대의 모니터와 전화기·축음기 등으로 만든 백남준의 대형 작품 프랙탈 거북선 을 소장하 고 있다. 1993년 대전 엑스포를 기념해 제작한 작품으로, 기존의 거북선 이미 지를 새롭게 창조해 당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백남준은 “거북은 이순신의 하 이테크 무기와 세계 최초의 장갑선, 생 태학적인 특수 표본”이라 말한 바 있다. 작품은 미술관 로비에 축소 전시되다 2022년 복원 작업을 마치고 원형을 공 개했다. 한편 거북이를 형상화한 또 다 른 작품 거북 은 울산시립미술관에 있 다. 166대의 모니터를 거북 형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대전 서구 둔산대로 155 카를스루에ZKM 예술미디어센터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독일 서남부 카를스루에Karlsruhe는 현 대음악·현대미술에 대한 연구와 교육 이 활발한 곳이다. 그 가운데 미디어 작 품 연구와 보존·복원의 중심 역할을 하 는 곳이 ZKM 예술미디어센터. 1960년 대부터 다채로운 비디오아트 작품을 소 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컴퓨터 기반 설 치 작품, 비디오테이프, 비디오 설치 작 품에 대한 집중도는 세계적으로 유일무 이하다. 미디어아트에 관심 있는 이라 면 꼭 들를 만한 곳. 이곳의 보존·복원 담당자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 선 복원 당시 여러 견해를 전해주기도 했다. 소장작으로는 백남준의 Internet Dream , Arche Noah 등이 있다. Arche Noah 는 식물로 구성된 바다 위에 뱃머리가 떠 있고 그 위에 모니터 를 얹은 작품으로, 종종 센터의 대표 소 개 이미지로 쓰인다. 내부에 마련된 미 디어 라운지에서 백남준의 오디오 및 비 디오 컬렉션도 감상할 수 있다. 28 PIONEER OF THE KOREAN ARTS venue ©Nam June Paik Art Center ©우종덕/국립현대미술관 ©Studio Kenn ©FelixGrünschloss
31페이지 내용 : 1960년대, 한국 최초의 뮤지컬 제작기 를 상상력으로 풀어낸 코미디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서울시뮤지컬 단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단인 예그린악 단의 맥을 잇는 단체로, 그 정체성과 맞 닿은 작품을 이번 시즌 무대에 올린다.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는 두 주인공이 뮤지컬이라는 미지의 장르에 도전하며 펼쳐지는 고군분투의 여정을 담는다. 기상천외한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부의 지시와 검열로 인해 대본은 여러 차례 수정된다. 배우들은 방향을 잃은 채 즉흥적인 연기를 이어가며 혼란에 빠 지지만, 바로 이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 황과 각 인물의 대응 방식이 강력한 코 미디 요소로 작용해 공연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결국 이 모든 소동 속에서도 뮤지컬은 완성된다. 우연한 착오로 시작된 여정 은 도리어 모두를 성장하게 만들고, 오 늘의 뮤지컬을 있게 한 출발점으로 남는 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극작가 박해림과 작곡가 최종윤을 만나 이야기 를 나눴다.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는 서울 시뮤지컬단의 전신인 예그린 악단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박해림 서울시뮤지컬단에서 예그린악단 이 제작한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 예 의 제작 과정을 담은 뮤지컬을 만들 어보자는 제안을 했어요. 작품을 개발 하는 과정에서 살짜기 옵서예 이전에 도 서툴지만 분명 더 이른 시도가 있었 을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논의가 이어졌 죠. 서울시뮤지컬단이 진행한 당대 예 술가들과의 인터뷰와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토대로, 살짜기 옵서예 와는 또 다른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만의 이 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예그린악단이 창 단된 1961년은 ‘뮤지컬’이라는 단어조 차 생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의 여러 에피소드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신기하고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존경 심을 불러일으켰어요. 여러 어려움 속 에서도 한국 최초의 뮤지컬을 만든 거니 까요. 해외 소식을 접하기 쉽지 않던 시절인데, 당시 예술가들은 어 떻게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알 게 됐을까요? 박해림 사운드 오브 뮤직 의 원작은 1958년에 선보인 보리수 입니다. 그 작품을 직접 관람한 분들도 있고, 보지 않았더라도 미국에 뮤지컬이라는 새로 운 예술 형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른 채 접 한 건 아니었다는 거죠. 실제 인터뷰에 서도 그런 내용이 있어요. ‘우리도 한국 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해 보자’는 마 음으로 모였다고요. 그래서 당시 창작 의 출발점은 설화나 민화였고, 더 퍼스 트 그레잇 쇼 에서는 이순신이라는 인 물을 중심으로 한 ‘극중극’을 설정했죠.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에는 ‘북 한의 피바다가극단을 능가하 는 엄청난 공연을 제작하라’는 미션이 설정돼 있습니다. 반공 과 검열 같은 요소들이 배경으 로 깔려 있어 당시 시대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데요. 그 접근을 비장함이 아닌, 풍자로 풀어냈 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박해림 ‘검열’이 이 작품의 키워드 중 하나 가 될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살짜기 옵 서예 가 발표된 건 1966년이지만,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는 그 이전 시기를 배 경으로 하고 있어요. 당시 실제 검열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죠. 그래서 이 작품 속 검열은 국가 주도의 문화 압박 정책이라기보다는, ‘자기 검열’의 의미 가 짙어요. 그 지점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유덕한 실장 박성훈·이 창용 분 으로 보입니다. 박해림 이들에게 주어진 공연은 사실 실 체가 없거든요. 실장이라는 인물도 마 찬가지예요. 중앙정보부 문화예술혁명 분과는 마치 문화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발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실 존재하지 않아도 무방한 허상 같은 존재 죠. 실존하지 않는 조직이에요. 더 퍼스 트 그레잇 쇼 속 뮤지컬은 유덕한 실장 이 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위기를 타 개하기 위해 택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예술을 검열해온 사람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예술적 감수성을 갖게 되고, 결국엔 다른 인물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 합니다.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연출 을 맡게 된 김영웅 이승재·조 형균 분 을 비롯해,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해온 예술가들 의 면면도 인상적인데요. 이들 에게 공통된 정서가 있다면 무 엇일까요? 박해림 실제로 오페라를 하신 분도 있 고, 합창단 출신이나 소리꾼도 계셨어 요. 무엇보다도 대부분이 원래 속한 분 야에서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분들이에 요. 김영웅 역시 무대 주변을 맴돌고 있 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아본 적은 없죠.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는 그런 아웃사이 더들이 모여, 비록 예술 그 자체는 아닐 지라도, 예술적인 무언가를 향해 엉성 하더라도 결국엔 자기만의 작품을 완성 해가는 이야기예요. 그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이제는 나도 내 목소리 를 내고 싶다. 내가 여기 무대에서 살아 가고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말 하고 싶다.” 최종윤 각기 다른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구조이기 때 문에 음악적으로도 ‘쉽게 어우러지지 않 는다’라는 콘셉트가 있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창법과 발성으로 드러나죠. 그 런데 이들이 점점 각자의 욕망을 작품 안에 담기 시작해요. 입신양명을 꿈꾸 는 이도 있고, 그런 기회조차 없었기에 이 무대를 통해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이도 있어요. 처음엔 서로 달랐던 욕망 이, 정치적 상황이든 다른 이유든 연습 과정에서 점차 동질감으로, 나아가 무 대에 대한 소중함으로 변해갑니다. 예 술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서로의 열망 도 응원하게 되고요. 그 방향성이 음악 에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낯선 존재들의 만남에서 비롯 한 희극적인 상황도 흥미로운 데요.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는 코미 디가 아닐까 싶어요. 박해림 자연스럽게 코미디라는 장르성 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무선 마이크가 없던 시절이라, 노래를 하려 면 천장에 매달린 유선 마이크를 찾아다 녀야 했죠. 다양한 예술 장르가 뒤섞이 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다 보니, 오페라 가수가 춤을 추고, 드레스 대신 해녀복 을 입는 상황이 계속 발생해요. 그런 낯 섦에서 오는 당황스러움이 코미디가 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코미디는 박 장대소보다는 미소에 가까워요. 허구 가 대부분이지만 실제 역사에서 모티프 를 가져온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 요. 당시 예술가들을 존경하는 마음에 서 출발한 작품인데, 코미디라는 장르 특성상 자칫 과장되거나 희화화로 보이 지는 않을까 걱정도 있죠. 최종윤 저는 처음 대본을 읽고 박장대소 했어요. 웃음 사실 코미디 작업은 처음 이고, 창작진 의도와 관객 반응이 잘 맞 기 어려운 장르라 조심스럽기도 했죠. 특히 여러 해 동안 뮤지컬 작업을 해오 면서 어느 순간 ‘머리가 지쳐 있는 상황 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요.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는 그동안 해온 작업 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작품이었어요. 저에게 또 다른 발전의 계기가 되지 않 을까 싶어요. 특별하고 멋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관객과 소통 하는 재미가 있을 거라는 기대도 되고 요. 아마 다른 시기에 이 제안이 들어왔 다면 흥미로워도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하고 거절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런데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고, 시기적 으로도 딱 맞아떨어졌죠. 그런 기대감 이 이 작품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원동력 이 됐어요. PIONEER OF THE KOREAN ARTS interview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