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페이지 내용 : 거울이 깨질 때 피어나는 춤내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그들이 나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이 내 피부 아래로 스며들 때, 나는 그 이름 을 배웠다. 그리고 내 혀 위에서 그 이름 은 새로운 맛을 가졌다. 식민지의 아이는 지배자의 언어로 자신을 부르는 법을 배 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오 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밝힌 진실은 우리의 뼈를 울린다. ‘동양’은 서구의 창 조물이다. 서구인은 ‘동양’이란 거울을 만들어 자신을 ‘서양’으로 세웠다. 그 거 울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신비롭고, 이국 적이며, 기이하고 열등한 타자였다. 하 지만 이 거울이 내 눈동자에 비친다고 해 서, 나는 그 속에 갇힐 운명인가? 토니 모리슨Chloe Anthony Wofford Morrison 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흑인이 영어를 지배하고, 영어가 흑인을 지배한 다.” 이 말들이 오리엔탈리즘의 숲에서 도 메아리친다. 저들의 시선이 만든 ‘동 양’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른다면, 이제 그 흐름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나의 몫이라. 안은미의 동방미래특급Post-Orientalist Express 2025/05/02-05/04 세종문화 회관M씨어터 은 이 전복의 의식을 몸으 로 치르는 성스러운 의례다. 뒤집힌 지도나의 몸이 새로운 세계를 춤춘다 “모든 것이 내 것이면서, 아무것도 내 것 이 아니다.” 이 말은 강물처럼 흐르며 역 설의 바다로 이어진다. 안은미의 동방 미래특급 에서 이 말은 춤의 심장을 뛰 게 한다. ‘에어원Erehwon’—거울 속에서 ‘노웨어Nowhere’가 자신을 찾아 나온 그 곳—은 기존의 지도를 태워버리고 재로 새 지도를 그리는 꿈의 땅이다. ‘아니하 Anihca/China’, ‘아에로카Aeroka/Korea’, ‘나파 자Napaja/Japan’—이 거꾸로 읽은 이름들 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의 이름을, 정체성을, 역사 쓰기의 힘을 되찾는, 호미 바바Homi Bhabha가 말한 ‘제 3의 공간’을 여는 마법의 주문이다. 안은미의 몸은 뒤집힌 지도 위에서 새로 운 알파벳을 만든다. 태극의 원이 노能의 직선과 만나고, 카타칼리의 손짓이 그사 이를 채울 때, 이것은 더 이상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말한 ‘살아 있는 몸’이 써 내려가는, 이른바 ‘제 3의 전통’이다. 그 녀 의 몸은 서구가 만 든 ‘동양’이라는 유리 감옥을 깨뜨리고, 그 파편으로 새로운 모자이크를 짓는다. 침묵에서 춤으로, 족쇄에서 날개로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은 물었다. “하위 주체는 말할 수 있는 가?” 안은미는 대답한다. “그들은 춤출 수 있다.” 침묵을 강요받은 입술이 노래 하고, 정지를 명령받은 다리가 춤춘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반항의 외침이 아 니다. 내 안에 스며든 그들의 시선을 발 견하고, 그 시선으로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마법이다. 안은미는 내 안에 둥지를 튼 ‘서구의 눈’ 을 발견한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볼 때, 그 눈이 함께 본다. 그 눈에 꼬챙이를 찔 러넣어야 할까? 그 녀 는 이 내면의 식민 자를 몰아내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땅 을 춤추게 한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시대착오적 이름 아래 사실과 환상이 뒤 죽박죽으로 섞여온 영역”을 그 녀 는 “동 서양의 구식 위계를 무너뜨리는 인류 공 용의 자산”으로, 새로이 밀고 당기기의 축제가 전개되는 ‘교섭의 장trading zone’ 으로 변모시킨다. 이것은 스피박이 말한 ‘전략적 본질주의’ 를 몸으로 써 내려가는 서사시다. 안은미 는 ‘동양적’ 가면을 쓰지만, 그 가면 아래 서 끊임없이 표정을 바꾼다. ‘아니하’의 선이 ‘에크나르파Ecnarfa/France’의 원과 만 날 때, 그것은 더 이상 굴절된 식민 유산 의 파편이 아니다. 그것은 프란츠 파농 Frantz Fanon이 말한 ‘정신적 카타르시스’, 하위 주체가 자신을 파편화/주변부화한 도구를 빼앗아 내면화된 식민적 시선까 지 해식민화解植民化, decolonize하며 새로운 세계를 조각하는 창조의 순간이다. 경계를 춤추는 몸국가 권력의 한계선을 지우고 새 지도를 그리다 동방미래특급 은 국경선이 사라진 세계를 춤춘다. 이 초국가적/국횡적 transnational 상상력은 오래된 지도를 불 태우고 그 재로 새 지도를 그린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가면을 벗고, 창 조적 혼돈이라는 맨얼굴을 드러낸 예술” 이다. 전통이라는 새장과 서구식 현대성 이라는 또 다른 새장, 그 두 새장의 문을 동시에 열고 자유로이 날아오른다. 안은미의 몸은 현실 권력의 중력을 거부 한다. 그녀의 안무는 ‘문화’라는 무거운 껍질을 벗고, 가볍고 투명한 영혼의 날갯 짓으로 변모한다. 이 춤은 분류와 경계가 만든 모든 상처에 맞서는 치유의 의식이 다. 이 의식은 서구의 진보 신화를 넘어, 아시아의 심장에서 태동하는 새로운 문 화적 교류와 그 혼종적 아름다움을 빛나 게 한다. 동방미래특급 의 춤은 단순히 기존 질 서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그것은 토니 모리슨이 말했듯 “억압적인 언어를 해 방”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여는 열 쇠다. 깨진 거울 조각이 만드는 새로운 모자이크처럼, 하위 주체는 자신을 파편 화한 문화적 착취의 도구를 역으로 전유 해 예술의 무기로 삼을 수 있다. 이는 오 리엔탈리즘이라는 시각적 언어를 지배 하면서도 그것에 지배당하는 역설적 춤 이며, 나아가 그 춤을 통해 포스트 오리 엔탈리스트의 탄생을 목도하게 된다. 춤추는 나, 춤추는 세계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행 안은미의 동방미래특급 은 사이드가 분석한 ‘동양’과 ‘서양’이라는 오래된 이 분법적 거짓말을 넘어선다. 그 녀 는 오 리엔탈리즘이라는 거울을 깨고, 그 조각 들로 눈부신 만화경을 만든다. 이 만화경 속에서 ‘동양’은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숨 쉬고 변화하는 다층적 정체성의 살아 있는 움직임이 되고, 그 움직임은 ‘서양’ 의 수정을 요구하는 주술이 된다. 동방미래특급 의 성취가 빛나는 이유 는, 그것이 단순한 거부의 몸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녀 는 내면화된 오리엔탈 리즘을 발견하고, 그것을 창조의 재료로 삼아 포스트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상 상력을 열어젖힌다. 춤이라는 원초적 언 어로, 그 녀 는 말과 문화, 국경과 대륙을 넘어 우주의 별들처럼 서로 연결된 새로 운 인드라망의 시공간을 짓는다. “만약 모든 이름이 바람결에 흩어지고, 모든 경계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면, 우 리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안은미의 춤은 이 질문에 대한 침묵의 대답이자, 몸이 쓰는 영원의 시다. 그것은 정체성이 라는 족쇄를 풀고, 경계라는 담을 넘어, 오리엔탈리즘의 거울 너머 미래로 가는 비밀 통로를 연다. 나는 미래를 춤춘다, 고로 너는 내일로 존재한다 안은미의 동방미래특급 은 21세기의 복잡한 문화 지형 속에서, 오리엔탈리즘 의 내면화와 그 극복이라는 이중의 과제 를 춤의 언어로 풀어내는 선구적 작업이 다. 그것은 서구 중심적 시선에 의해 구 축된 ‘동양’의 이미지-체제를 해체하고, 아시아 내부의 다양한 문화적 교류와 충 돌·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 을 제시한다. 내가 지도를 읽는 법을 배웠을 때, 그들 은 내게 경계의 선을 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안은미는 그 선들 사이의 빈 공간 을 보라고 말한다. 빈 곳에서 해방의 춤 이 꽃핀다. 그 춤은 국경과 범주를 뛰어 넘어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몸의 주술-시로 우리 곁에 남는다. 그리고 이 렇게 속삭인다. ‘나는 미래를 춤춘다, 고 로 너는 내일로 존재한다.’ 오늘의 그대 도 춤춘다, 고로 그대와 내가 ‘우리’의 인 연으로서 존재한다. criticism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