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페이지 내용 : 백남준·마크 패츠폴Mark Patsfall, 그리고 나의 인연은 2005년 뉴욕의 더 터널The Tunnel에서 열린 에디션/아티스트 북페 어Editions/Artists’ Books Fair에서 시작됐다. 마크 패츠폴의 부스를 지나가던 내게 그 가 건넨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 가, 훗날 수년간 이어질 백남준 아카이 브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 나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위치한 인 디애나 주립대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 고,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신시내 티의 클레이 스트리트 프레스Clay Street Press의 디렉터인 마크의 초대로 그의 판 화 공방을 방문했다. 클레이 스트리트 에 자리한 이 인상적인 공방은 무거운 철제 프레스기의 휠을 로고 간판으로 내 건 건물이었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열 린 문 너머로 마크의 환대가 이어졌고, 입구에는 ‘어서오십시오’라고 적힌 작은 플라스틱 팻말이 걸려 있었다. ‘이곳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백남준의 세 계로 들어섰다. 백남준1932-2006은 비디오아트의 선구 자이자 현대 미디어아트를 이끈 세계적 인 예술가다. 그는 동양 철학과 서구 기 술을 융합한 새로운 예술 형식을 창조 했으며, 예술과 대중, 기술과 인간, 동서 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미학을 펼쳤다. 백남준의 작업은 실험적이면서 참여적이었고, 퍼포먼스와 설치미술· 미디어를 결합하며 예술의 경계를 끊임 없이 확장했다.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첫 개인 전에서는 텔레비전을 예술 매체로 사용 하며 비디오아트의 기틀을 세웠다. 이 후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 , 프리 벨맨Pre Bell Man , 초고속 전자고속도로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 , TV 부처TV Buddha 등 대표작을 통해 기술과 생명의 융합을 탐구했다. 플럭서스Fluxus 운동에 참여하고,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과 협업하는 등 전위적인 활동을 펼치며 세계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백남준. 그는 1982 년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통해 그 예술세계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 그는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위해서도 노 력하며 광주비엔날레와 베니스비엔날 레 한국관 설치에 크게 기여했다. 백남준 ,1982, 폴 게린 아카이브,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04 PIONEER OF THE KOREAN ARTSarchive
7페이지 내용 : 서울시뮤지컬단이 새롭게 선보이는 뮤 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는 한국에 서 처음 뮤지컬을 만드는 과정을 코믹하 게 그린다.1960년대 군사정권 시절, 국 가의 지시에 따라 특별한 쇼를 제작해야 했던 예술가들이 좌충우돌하며 공연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뮤지컬의 매력을 알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로 알려진 예그린악 단의 살짜기 옵서예 1966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예그린악단의 전통을 계승한 단체다. 이번 작품은 예 그린악단의 업적을 다큐멘터리적으로 재현하지는 않지만,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창단 취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초창기 예그린악단의 뮤지컬은 혼란한 시대에 위로와 희망을 주며 인기 가 높았고, 더 퍼스트 그레잇 쇼 를 코 미디로 설정한 건 당시 단체의 설립 취 지를 보여주기에 적합해 보인다. 한국 뮤지컬은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제작 능력 을 자랑하며, 활발한 수출과 창작자들 의 국제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뮤 지컬은 꾸준히 중국·일본에 수출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에는 수출 편수가 20-30편으로 늘었다. 또한 한국 뮤지컬 창작자들이 중국·일본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뮤지컬의 본산지인 영 미권 진출도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국 내에서 인기를 얻은 창작뮤지컬 어쩌 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이 브로 드웨이에 소개되어 올해 토니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중이다. 이처럼 르네 상스를 맞기까지, 그 기저에는 척박한 환경 속에 뮤지컬에 인생을 바친 선구자 들의 헌신이 있었다. 예그린악단 초창기 공연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