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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페이지 내용 :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소 설 ‘벽 속의 문’을 처음 읽은 건 십여 년 전이었습니다. 성공한 정치인 웰러스가 들려주는 신비한 문 이야기를 친구 레드 몬드가 독백 형식으로 전하는 작품이지 요. 당시 저 또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진 로를 고민하던 시기였기에 웰러스라는 인물에 공감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우연한 계기로 다시 소설 을 꺼내 읽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와 달리 일종의 거리감이 느껴졌습니 다. 왜일까 떠올려보면 지금은 꿈과 현 실을 저울질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시 대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문을 지나친 사람보다 애초에 문을 보지도 못한 사람 이 더 많은 거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타인의 문 이야기를 대신 전하고 있는 레드몬드라는 인물이 궁금해졌습니다. 한 번도 문을 본 적 없는 그에게 문은 어 떤 의미일까. ‘벽 속의 문’을 각색한 이번 1인극 문 속의 문 은 성공한 정치인 웰 리스가 들려주는 문 이야기보다는 ‘친구 레드몬드의 독백’에 따릅니다. 작품 속 문은 내가 놓쳤거나 가지 못한 어떤 가능성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제 경우 어떠한 현실적인 이유로 벽 속에 넣어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쓰고 싶 은 걸 쓰는 나’인 듯합니다. 글을 쓰면 쓸 수록 이런 건 안 돼 선을 긋고, 볼 가치가 있는 글과 보여주기 위한 글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자신을 발견합니다.어쩌면 문 속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이 작업을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된 ‘각색’ 의 의미란 원작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리고 현재의 나로서 그 이야기에 응답하 는 행위입니다. 작품을 잘 읽는 일만큼 이나 자신을 제대로 읽는 일 또한 중요 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둡니다. 구체적 으로는 내가 속한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 는 일이겠죠. 양쪽 모두를 잘 파악해야 작품과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 고,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볼지도 결정 할 수 있으니까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늘 아침 산책을 합 니다. 집 근처 개천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걷고 반환점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커피 를 삽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제 쓰다 잘 풀리지 않던 장면을 곱씹습니다. 풀 리면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운동은 했 고 커피도 마셨으니 소득이 없는 건 아 니죠. 글도, 다른 세상의 일들도 계획대로 되 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가 들어가며 점점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 을 별수 없지, 하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 또한 주어진 상황에서 최 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깁 니다. 제 글이 만들어낼 결과보다 쓰는 행위 자체에 집중합니다. 강남 뮤지컬 호프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으로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 극본상을 받았다. 뮤지컬 동네 , 포미니츠 , 검은 사제들 등의 대본을 썼다.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며,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지금의 일을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가능성이라는 미완의 기쁨 12 SYNC NEXT, SEED NEXThom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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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페이지 내용 : 의도가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움직임에 인간의 감정 혹은 본질이 숨겨져 있다 고 믿습니다. 숨을 고르며 앉고, 고개를 돌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 작은 행위 들이 어쩌면 커다란 절망과 분노를 말하 고 있을 수도 있어요. 일상의 움직임 안 에 오래 머물고, 그것이 저를 통해 다시 흘러나오는 과정을 바라봅니다. 기교가 아닌 기억을, 형태가 아닌 감각을, 드러 냄이 아닌 머뭇거림을 추구합니다. 늘 무대에 오르지만, 무대를 허구라 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 려 현실이야말로 가장 정교하게 꾸며 진 ‘무대’ 아닌가요? 현실엔 늘 정답이 있고, 질서가 있죠. 말이 되기를 요구하 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무대는 그럴 필 요가 없습니다.이유 없이 몸이 떨릴 수 도, 침묵하지만 더 많은 말을 전할 수 도 있어요. 제게 무대란 사회라는 이름 의 구조에서 밀려난 것들, 말이 되지 문화, 공존을 위한 당시의 감각이 지금 까지도 제 작업에 큰 영향을 줍니다. 저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냅니다. 정 해진 시간에 연습실에 가고, 음악을 틀 고, 몸을 풀죠. 생각이 막힌 것 같을 땐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지만, 계획하 고 검색만 하다 그대로 앉아 작업하는 날이 대부분이에요. 스마트폰의 사진첩 을 내려 보며 잊고 있던 장면들을 떠올 리기도, 영화를 보며 그 안에 돌아다니 는 에너지, 분위기, 감각 같은 걸 채집하 기도 합니다. 가장 큰 영감이 되는 건 역시나 일상입 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 길가에 흔한 무표정, 그 모든 게 잠재적인 이야 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감은 무심하 게 스며듭니다. 느릿하지만 계속 흘러 갈 수 있는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제 안 에서 조용한 충돌처럼 일어나는 변화로 부터 시작합니다. 김성훈 김성훈댄스프로젝트 대표이자 안무가. LDP 무용단과 아크람 칸 컴퍼니에서 활동했다. 서울문화투데이 제15회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2022년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가상 베스트6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작으로 FLASH , GRIMENTO , 일무 , 조동 , Mindseeker , Pool 등이 있다. 현실에서 버려진 것들이 숨 쉬는 공간 않아 버려진 감정들, 감춰진 신체의 울 음 같은 것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입 니다. 이번 신작 핑크Pink 는 현실이 가진 무 감각한 잔혹성을 담아냅니다. 그 아래 감춰진 윤리적 흔들림을 묘사하죠. 작 품의 기저에는 분명한 서사가 있지만, 그것을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무용수의 행위와 감각을 통해 새로 운 질서로 재조립해 보여주는 방식을 취 합니다. 핑크 는 감상되기 위해 만든 완성된 서사가 아닌, 감당돼야 할 어떤 감각의 충돌입니다. 영국 아크람 칸 컴퍼니A k ra m K h a n Company에서 보낸 기간은 수많은 인종,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과 부딪히며 그 틈에 놓인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 다.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기보다는, 그 들과 비교하며 오히려 자신을 선명히 발 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존중과 배려의 society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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