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갈피 추가
페이지

32페이지 내용 : 카메라 렌즈보다는 마음의 눈을 열고 온전히 경험과 추억을 감각에 새겨보는 게 어떨까요. 정주원은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다. 대중가요부터 클래식까지 음악과 공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하며 공연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색다른 관객 개발 방안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빵을 자주 먹으면 밥을 먹고 싶을 뿐이니까 예술이란 말을 설명하기 위해 몇 번의 예술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까. 아마도 펜으로 글을 쓰다보 면 그 예술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예술에는 다양한 것이 있다. 어쩌면 다양함 자체가 예술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급하게 갓 지은 밥은 예술이었고, 바쁜 아침 아이의 맑은 질문 또한 예술이었고, 지하철에서 문이 닫히기 전 아슬하게 탑승 한 어르신의 움직임이 예술이었다. 그렇게 예술은 우리의 모든 것에 다양한 모습으로 깃들어 있다. 하지만 쉽게 볼 수는 없다. 관람 시간이 정해진 것처럼 사방이 예술임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유하는 나와 잔다. 15분 정도가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 작은 램프를 켜두고 즉흥으로 만든 동화를 한두 편 들려주면 램프가 꺼지기 전에 대부분 잠이 든다. 즉흥이라고 하지만 이야기 는 매일 밤 비슷한 구성으로 만든다. 어제는 코가 유난히 큰 곰의 이야기였다. 이 곰이 나오면 냄새를 잘 맡 아서 다른 동물들을 도와준다. 맑은 물이 있는 곳을, 과일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물건을 찾아주고 숨을 잘 쉬지만, 감기에 잘 걸려서 가끔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친구들이 보살펴주기 때문 에 다음날에는 회복한다는 등의 설정이다. 설정이 분명하지 않으면 유하는 잠이 깨서 왜냐고 물어본다. 이런 상황이 된다면 이야기 시간은 연장된다. 그래서 나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기절할 지경이지만, 적어도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정신을 바짝 차린다. 잘못하면 15분. 그 이상이 추가되기도 한다. 무사히 램프가 꺼지고 유하도 잠이 들면 나는 맑은 정신으로 어두운 방을 맞이한다. 유하의 쌔근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두움을 바라보고 있으면 흐릿하게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불의 모양이 나 잠자기 전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보인다. 문틈에서 창문에서 흐릿한 빛이 보인다. 점점 모든 것이 보인 다. 나는 유하를 한동안 바라본다. 어제와 조금 변했다. 커지고 길어지고 진해졌다. 나는 밤마다 예술을 하고, 예술을 발견한다. 어느 때보다도 맑은 정신으로, 비슷한 일과 사이에30

페이지
책갈피 추가

33페이지 내용 : 서 달라진 것을 보게 된다. 반복에는 성실함이 필요하고, 성실함에는 애정이 필요하다. 애정하지 않는 일 에는 성실함도 반복도 없다. 따라서 애정하는 마음 앞에 예술은 언제나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드러내는 쪽 을, 또 누군가는 느끼는 쪽을 주로 할 뿐이다. 공원에서 어느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날씨가 예술이라고. 식당에서 국물을 마시고 어느 사람도 말했다. 국물이 예술이라고. 주차하고 보조석에서 나오는 사람도 말했다. 주차가 예술이라고. 그들은 어떤 날씨를 보아오고, 어떤 국물을 먹어봤으며, 누구의 차를 타본 걸까. 나는 유년기에 가족여행을 다니면 그렇게 싫었다. 나무에, 계곡에, 하늘에, 바다가 싫었다. 아파 트 단지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나무로도 충분했고, 세수할 때 물줄기면 충분했다. 날씨는 흐리면 우산을 쓰 면 될 일이고, 파도의 눈부심은 그냥 피곤했다. 하지만 요즘엔 그것들이 늘 귀하고, 그립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의 구름이 움직이다가 서서히 사 라지는 모습을 보고, 계곡에 자리잡은 돌이며 물줄기를 본다. 흔들리는 나무에 나뭇잎들을 보고, 때마다 변 하는 파도를 넋 놓고 바라본다. 아마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차이를 알아낸다는 뜻일 것이다. 한 개와 두 개의 차이는 뻔한 것이지만, 수많은 것들의 차이는 그것의 복잡함으로도 예술이 된다. 나는 이것을 아날로그라고 한다. 우리의 수많은 경험들은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결과를 생각하 게 한다. 문을 열면 비가 올 수도, 흐리기만 할 수도, 어쩌면 맑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복잡 미묘한 상황들 을 볼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예측 가능한 것들이다. 경험으로부터 온 예측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그 안정감 속에서 흥미가 생긴다. 이제 한 살이 된 비주는 아이용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달린 식사 의자에서,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처음에는 숟가락이 떨어지는 소리에 스스로 떨어뜨렸음에도 놀라서 울상을 지었다. 그러다가 오이도 떨어뜨려보고, 수건도 떨어뜨리면서 낙하의 경험을 배웠다. 떨어뜨리는 방법도 여러 가 지가 되었는데, 멀리 던지거나, 다른 것으로 밀거나 하면서 낙하의 순간을 즐거워한다. 요즘에는 더 크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있다. 식탁에 있는 것을 손짓하며 달라는 시그널을 보내기도 한다. 비주는 낙하가 주 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예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과 경험 속에서 우리는 예측한다. 그것은 놀이의 순간이 되기도 하고, 차이를 발견하는 도구 가 되기도 하고, 흐릿한 것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은 현실에만 있지 않다. 가족여행을 싫어했던 유년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31

파일 다운로드

탐 색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