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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페이지 내용 : ‘고선웅식式 마법’이라는 말은 절대 거창 하지 않다. 스타 연출가인 고선웅 서울 시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의 연극·뮤지 컬·창극·오페라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 나 수긍할 문장이다. 기구한 삶에 대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태도는 슬픔을 비참 하지 않게 승화한다. 그건 정중한 애도哀 悼를 통한 경건한 정도正道로 통한다. 5.18민주화운동 속에서 꽃핀 남녀의 사 랑을 침잠하지 않고 촌철살인 입담과 리 듬감으로 풀어낸 연극 푸르른 날에 , 억울하게 죽은 두 남녀가 상여에 올라 진도아리랑을 신나게 부르던 뮤지컬 아리랑 , 험난한 바닷길에서 목숨을 잃 은 아들이 구성진 뱃노래를 부르며 모친 과 작별하는 연극 산허구리 , 바쁘게 살아가는 한국인을 그린 공연 내내 닫 혀 있던 창문이 “해sun 보는 거야”가 “해do 보는 거야”로 치환하는 대목에서 열려 희망의 빛을 끌어안는 연극 한국인의 초상 등 ‘고선웅식 따듯한 판타지의 절 정’을 이루는 작품들은 사람에 대한 애 정이 바탕이 된 극진한 위로가歌였다. 올해 국공립 극단 작품으로는 이례적으 로 백상연극상을 받은 서울시극단 퉁 소소리 역시 그 길을 간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조선 시대 선비 최척이 가족과 이별·재회를 거듭하는 우여곡 절의 30년을 담은 고소설 ‘최척전’이 원 작. 각색·연출을 맡은 고선웅이 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꽌시, 다이조 부,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삶의 도달불 능점을 기어코 환멸하지 않은 채 버텨내 소멸하지 않고 불가피한 관계의 불멸을 증언하는 행위로 수렴한다. 6월의 초여름,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고선웅은 퉁소소리 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보편 적인 주제나 작품이 추구하고 있는 내용 이 ‘백상의 품격에 부합이 된 모양’이라 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찌감치 재공연이 확정된 퉁소소리 2025∕09∕05-09∕28 는 리듬, 해학, 뚝 심 등 고선웅의 장점이 모두 녹아든 작 품인데, 그는 정작 공을 배우와 제작진 에게 돌렸다. “원작이 가진 힘도 있고, 이 호재 선생님 노老최척 겸 해설자 이 굳건 하게 자리를 잡고 계시니까 거기에서 온 오라aura가 좋았고요. 공개 오디션을 거 쳐서 합류한 배우들이 너무나 열정적이 고 순수하게 제가 추구하는 방향에 어울 리게 정진해줬어요. 정말 분란 한번 없 이 공연이 너무나 행복하게 잘 올라갔 어요. 전란 속 우리 민중의 수난사를 그 리는 동안 민족 의식과 동료 의식이 배 우들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날 수밖 에요.” 고선웅의 작품에선 사실 배우·제작진 의 분란이 일어날 수 없다. 바깥까지 아 우르는 작품 자체의 원심력이 워낙 좋은 데다가 프로덕션을 이끌어가는 구심력 이 탄탄해서다. 스타 배우들도 고선웅 과 처음 일한 뒤 사람 좋은 그의 팬이 됐 다고 입을 모은다. 우린 행복하기 위해 서 산다. 우린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 그 가 연습실·공연장에서 배우·제작진 앞 에서 끊임없이 되새기는 말이 물리적으 로 구현되는 순간들을 계속 목도하기 때 문이다. “순간순간 우리가 행복한지를 계속 되묻죠. 저 먼저 행복하면 배우와 제작진이 행복할 테고, 이들이 불행하 면 저도 불행하니까 서로 뜻을 잘 맞춰 야 쌍방이 행복하잖아요. 연극에선 팀 워크가 제일 중요하니 서로 행복하지 않 으면 이 일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반 면 팀워크가 있으면 혹시 서사가 조금 부족하고 연출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집 단의 에너지 덕분에 작품이 좋은 기운을 가지고 가죠.” 이는 고선웅이 누누이 말 해온 ‘겉절이 미학’과 맞닿는 지점이 있 다. 겉절이는 다소 막 버무린 것 같지만, 완성된 맛과 식감이 나온다는 것이다. 고선웅은 2022년 9월 서울시극단에서 시작한 3년 임기를 오는 9월 끝낸다. 그 간 마샤 노먼의 겟팅아웃 , 프로스페 르 메리메·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 헨 리크 입센의 욘 , 그리고 퉁소소리 를 연출했다. 예술감독으로는 굿닥터 연출 김승철 , 연안지대 연출 김정 , 컬렉션 연출 변유정 , 코믹 연출 임도완 , 키스 연출 우종희 , 트랩 연출 하수민 을 올렸다. 6월엔 자신이 14년 만에 완성한 순수 창작극인 유령 을 선보이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줬 다. 예상대로 고선웅이 재직하는 내내 호평이 쏟아졌고 임기 연장에 관한 얘기 가 일찌감치 나왔지만, 그는 부임할 때 부터 공언한 대로 이곳을 떠난다. 2005 년 자신이 창단한 극공작소 마방진이 올 해 20주년을 맞이했는데, 서울시극단 임기가 끝나면 이 단체 활동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서울시극단 3년을 돌아본 고선웅은 삼 세번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1년 차엔 들뜬 기분이 있었고, 힘도 당연히 많이 들어갔을 테고… 2년 차가 되면 서 심리적인 안정감도 생기고 초조함이 나 조바심 같은 게 좀 덜어지더라고요. 3년 차엔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마음이 커요. 3년 동안 배우님들의 활기 와 행복이 느껴져서 스스로도 편해졌고 요. 이젠 집같이 느껴집니다.” 공연, 결국 사람이 함께하는 일 고선웅의 장점은 사람뿐 아니라 작품에 도 긴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예 컨대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2014는 지난해10주년을 맞이했고, 국립 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2015은 올 해가 10주년이다. 두 작품 모두 각 단체 의 예술감독이 바뀌어도 꾸준히 공연하 는 우리 공연계 대표 레퍼토리다. 나아가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는 ‘옹녀 키즈’도 낳고 있다. 대학생 시절 이 작품 을 통해 처음으로 창극을 접한 김우정이 국립창극단원이 돼 옹녀 역을 맡은 것이 보기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은 올 하반기 1,200석 규모의 국립극장 해오 름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이 작품 의 매력 중 하나인 여백의 점·선·면이 더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은 옛날부터 큰 극장에서 마이크를 안 쓰고 육성으로 해 보고 싶 은 욕심이 있었어요. 극장이 너무 커 마 이크를 안 쓰는 건 너무 욕심인 것 같고, 38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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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페이지 내용 : 의 사랑 이 괜히 호응을 얻은 게 아니다. 지금도 샤워할 때마다 올드팝을 크게 틀 어 놓는다고 웃었다. 연극 유령 에도 그의 평범하지 않은 선곡 감각이 돋보였 다. 고선웅은 “예를 들어 제가 누군가에 게 쫓기는 상황이에요. 그때 ‘왓 어 원더 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가 흘러나 와요. 누군가는 그게 논리적인 개연성 이 있느냐고 묻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 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유 령 음악을 쓰면서 아이러니를 추구했 는데, 논리적으로 꼭 연결돼 사람을 설 득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요. 실제 인생도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 잖아요.” 이 대목은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애이불비 혹은 풍자와 해학 의 수법인 골계미 등 고선웅표 미적 범 주 연출로 이어진다. 슬픔을 있는 그대 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슬픔을 해 석하는 고선웅의 방식이다. 슬픔을 정 공법으로 정직하게 마주하는 예술 장르 도 있지만, 연극은 그런 방식으로 슬픔 을 대하면 참여하는 이들의 삶이 무너 질 수도 있다. “연극은 계속 숙달하고 외 우고 반복하잖아요. 그러다보면 슬픔을 슬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너무나 고통 스러워요. 왜냐하면, 연습 내내 울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지치고 말죠. 결국 나 중엔 영혼 없이 그 장면을 연기하게 됩 니다. 반대로 슬픔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연극적인 구조 안에서 해석하면 그 접근 방식에 설득력이 생기고, 그러면 관객도 자기 영혼을 가져와서 그 연기와 장면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저는 이런 극적인 상황이 공연에서 매우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은 진이 빠 지지 않는, 또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관 람할 수 있는 방식인 거죠. 연극은 즐거 운 놀이가 돼야 해요.” 이런 연출가적 리더십은 공연 구조와 내 용의 해석에서도 나오지만, 결국 그 근 본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공연 에 참여하는 배우, 제작진의 얘기를 전 부 듣는 것으로 알려진 고선웅은 그래서 자신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최소한을 제 외하고 공부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부를 좀 안 하면 어떤 장점이 있냐면 요. 스태프분들이 막 궁리를 해오시거 든요. 서로 의견을 유기적으로 주고받 으면 본인들의 룸room 공간 이 생기잖아 요. 그러면 조금씩 활력이 더 생기고 협 업과 조화가 이뤄지는 공간이 만들어져 요. 그때 예기치 않은 성과들이 꼭 발생 하거든요. 열려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 하면서 소통하는 게 연극 협업에 훨씬 맞아요. 물론 기본 가이드는 잡아야 하 겠지만,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구조 가 됐을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경우의 수는 너무 많거든요.”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계에 몸담기도 했 던 고선웅은 1999년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하면서 연극계에 입문했다. 26년 동안 공연 장르를 한 번도 싫어한 적 없는 얼 굴로 그는 “여전히 그저 재미있다”고 웃 었다. “옛날 한 방송에서 어느 병원 암센 터장님이 10년 동안 이 일을 했는데 진 력나지 않으면 터전이 잡힌다고 했어 요. 저 역시 그 말을 믿어요. 지금까지 진 력이 나지 않고 글 쓰는 거, 연출하는 거 모두 재밌어요.”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 나 문어체를 극본에 녹여내 관객들 역 시 공연에 진력나지 않게 하는 그는 “가 끔은 생경하지만 우리가 쓰지 않는 단어 를 썼을 때 작품에 격조格調가 생긴다”고 했다. “어떤 분들은 ‘일상 대화에서 누가 이런 단어를 써’라고 반문하지만, 일상 에서도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한 말을 쓸 수 있거든요. 극단에 치달으면 철학적 이고 문학적인 표현을 할 수도 있어요. 특히 희곡은 극단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 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식의 어법이 충 분히 가능합니다.” 고선웅의 이런 생각이 집약된 세계관은 현재 준비하고 있는 마방진 20주년 기 념 공연 라인업에서 더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사람이 중심이 된다. 그 는 우선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같이 보 낸 동료·선후배들을 위해 ‘중간 정산’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극공작소 마방진 의 극단적 저력’ 같은 헤드카피를 생각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곳에 몸담고 지내보니 보람도 있었구나, 하고 느끼 게 해주고 싶습니다. 배우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을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요. 위로, 희망이라도 계속 손에 잡히지 않고 막연하게만 느껴진다면 힘 이 빠질 수 있어요. 이번 20주년이 또 어 떤 단합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습 니다. 공연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거니 까요.” 대극장에서 보면 그림은 더 좋을 거예 요. 소극장에선 인물들이 아등바등 보 이는데, 대극장에선 관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선웅이 참여한 민간 제작사의 뮤지 컬도 또한 장수하고 있다. 그는 올해 25 주년을 맞은 뮤지컬 베르테르 2000와 2017년 초연한 뮤지컬 광화문연가 의 극본, 지난해20주년을 맞은 뮤지컬 지 킬앤하이드 2004 윤색 등을 맡았다. “ 베르테르 는 20고에 가까운 수정을 거쳤어요. 고쳐달라는 게 일리가 있으 니까 계속 고치고, 또 고쳤죠. 광화문연 가 같은 경우엔 광화문 근처에 방을 구 해 약 2년간 살면서, 눈 내리는 겨울에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썼죠. 지킬앤하 이드 역시 마찬가지로 공을 들였고요. 초연을 올리면 여기저기서 코멘트가 들 어와요. 그렇게 제안해주신 것들을 포 기하지 않고 다 고치면 작품이 개선됩니 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 지는 거고, 그렇게 되면 재공연을 할 수 있어요. 저는 늘 재공연하는 것을 목표 로 하니까요. 무엇보다 공연은 협업 예 술이니 의견을 듣지 않으면, 올리는 게 불가능해요.” 그가 뮤지컬 작법에도 소질이 있는 이 유가 있다. 학창 시절에DJ 활동을 한, 속 칭 ‘판돌이’이기 때문이다. 다섯 살 터울 의 형이 듣던 팝송, 부친이 즐기던 남인 수·고복수, DJ 김기덕·김광한이 소개 하던 ‘아메리칸 톱 40’ 등을 비롯해 다양 한 음악을 끼고 살았다. 그가 각색과 연 출을 맡은 주크박스 뮤지컬 백만송이 theatre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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