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페이지 내용 : ‘현대 발레의 최전선’, ‘창작의 격전 지’, ‘장르 혼성의 실험대’.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ederlands Dans Theater, NDT 의 궤적은 세 구절로 압축된다. 세계 무용계는 이 무대 위에서, 발레라는 언어가 해체되고 고전적 테크닉이 컨템퍼러리 감수성과 충돌하는 낯선 장면을 수없이 목격해왔다. 그러나 충돌 양상은 단순한 파열이나 조화 로운 통합이 아니었다. ‘컨템퍼러리 댄스’, ‘컨템퍼러리 발레’라 불리는, 명명되기를 거부하는 개념이 실험 을 통해 서서히 형체를 갖춰가는 창 조의 진통이었고,NDT는 그 고통이 형상을 얻는 첫 장소였다. NDT 역사에서 ‘발레 이후의 발레’ 를 체현한 안무가는 명확하다. 하나 는 절제된 형식과 미니멀리즘으로 무대 구조를 정밀하게 재편한 한스 판 마넨Hans van Manen, b.1932, 다른 하 나는 정서의 팽창과 신체의 광휘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이어리 킬리안 Jirˇí Kylián, b.1947이다. 상반된 전략으로 움직인 두 예술가는 ‘무용 언어의 재 구성’이라는 동일한 지점을 향했고, NDT는 그들 손을 거쳐 고전 발레 이 후의 지형을 개척하는 현대무용의 전위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대표작이 2025년 서울 무대에 나란히 오른다. 국립발레단은 6월 GS아트센터에서 ‘킬리안 프로 젝트’라는 이름으로 Forgotten Land , Falling Angels , Sechs Tänze 를 선보이고, 서울시발레단 은 하반기에 판 마넨의 5 Tango’s 와 Kammerballett 를 공연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 무 용계의 주류는 단연 클래식 발레였 다.1930년대까지 주류를 이룬 독일 식 표현주의 무용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퇴장했고, 그 자리를 전 후 복구기의 안정성과 국가적 상징 을 내포한 클래식 발레가 대신했다. 소니아 가스켈Sonia Gaskell, 1904–1974이 주도한 네덜란드 발레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전통의 복권을 시도했고, 전후 네덜란드 무용계는 ‘형식의 정 전定典’ 상태에 접어든다. 하지만 당시의 네덜란드 발레는 자 국의 미학적 기반 위에 구축된 전통 이라기보다 외래의 고전주의를 수 입해 모방하는 데 머물렀다. 외부 권 위를 수용하고 재현하는 태도는 자 국 안무가의 자율성을 억제했고, 결 국 1959년 벤저민 하카비Benjamin Harkarvy, 1930–2002와 한스 판 마넨이 기존 네덜란드 발레를 이탈해 NDT 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하카비와 판 마넨은 고전 테크닉을 부정하기보 다 그것을 창작의 출발점으로 삼아 기존 발레 문형을 재조립했다. 초기 NDT 리허설은 동작보다는 공간, 간 격, 여백을 중시했고, 판 마넨은 “움 직이지 않는 순간도 안무다”라는 지 시로 정지 상태마저 미학의 대상으 로 삼았다. choreographer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