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페이지 내용 : 뿌리를 따라 홍콩 , 혹은 냉전의 산물 대만 로 1950년대의 중국, 1960년대의 일 본을 거쳐, 1970년대 홍콩으로 가본 다. 홍콩 차이니즈 오케스트라Hong Kong Chinese Orchestra는 오늘날 중앙민 족악단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악 단으로, 1977년 홍콩예술축제HKAF 의 일환으로 창단됐다. 홍콩예술축 제는 오늘날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유럽의 공연예술단체가 이 축제에 참여한 뒤 아시아의 각국을 연이어 방문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악단명에 ‘차이니즈’, 즉 ‘중국’이 들 어가 있다. 창단되던1970년대 홍콩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면 왜 중국을 염두에 두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는 홍콩이 아직 영국 식민지이던 시기 로, 문화적으로는 중국 본토와 연결 되고 동시에 영국의 문화행정 시스 템을 갖춘 이중 구조의 시기였다. 이 러한 배경에서 홍콩 사회는 중국 전 통문화에 대한 재발견과 계승에 대 한 열망이 있었고, 이를 예술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상징적 기획이 바로 홍콩 차이니즈 오케스트라의 창단이 었다. 이러한 의도와 상징을 보다 구 체화하고자 1980년대를 지나 1997 년 홍콩 반환이 다가오던 1990년대 에는 중국 본토와의 교류를 확대해 나갔다. 이후2001년 독립 법인화가 이뤄져 행정적 자율성과 국제적 기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대만의 중화국악단National Chinese Orchestra Taiwan은 1984년에 창단됐 다. 창단 당시 악단은 대만 전통음악 의 현대화와 동시에 중화권 중국 민 족음악과의 보이지 않는 차별성을 확보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대만에서 장기간 이뤄진 계엄령을 꼽을 수 있다. 장제스蔣介石 체제 이후 국민당 일당 체제와 계엄 령이 지속되며 표현의 자유가 억제 됐고, 반공국가였던 대만은 공산국 가인 중국 본토 문화에 대한 경계심 도 철저히 유지하며 냉전의 혈류 지 대를 구축했다. 그러던 중 중화국악 단은 1987년 긴긴 계엄령의 안개가 걷히면서 악단의 생리가 완전히 바 뀌었다. 중국과 대척하며 스스로 쌓 아 올린 공성과 국수주의적 문화 정 책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서양악 기와의 융합에 적극성을 띠었다. 2020년부터 중화국악단의 지휘자 는 폴 치앙Paul Chiang이 맡고 있다. 게 오르크 숄티 지휘 콩쿠르에 입상한 그는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도 활발 히 활동하고 있는데, 이처럼 동서양 을 오가는 능력에다가 국제적 감각 을 갖췄고, 게다가 단단한 악단 운영 능력으로 인해 ‘철갑탱크’라는 별명 으로 불리고 있다. 60ARCHIVE
63페이지 내용 : 이처럼 서양식 시스템과 만난 민족 음악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살 펴본 중국·일본·홍콩·대만·싱가 포르의 악단은 단순히 민족악기를 통한 ‘편성 확대’가 아니라, 전통음악 의 시간성과 구조를 서양식 음악 어 법에 맞춰 재해석하고 재구성해가는 도전이었다. 이는 당시 작곡가와 지 휘자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더불어 악단마다 탄생의 ‘원인’과 ‘기 원’이 정치·경제를 둘러싼 사회적 배 경과 은유적이면서도 직결한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올해 창단 60주년을 맞은 서울시국 악관현악단의 탄생 배경에도 이러한 역사가 녹아 있다. 언젠가 이성천 전 서울대학교 교수·국립국악원장 은 창작된 국악은 사실 무無에서 유有로 향하는 ‘작곡’이라는 단어보다, 기존 의 유有에서 또 다른 유有로 전이시키 는 ‘재구성’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 로 전통음악을 원용하거나 인용해 빚은 곡이 많다고 했다. 어쩌면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두 번의 문화적 전후戰後에서 다시 찾아야 할 전통음악을 복원함과 동시에 널리 퍼트리는 성급함은 서울시국악관현 악단이 창단되던 1960년대에 전통 음악가들이 가져야 할 ‘조급한 음악- 하기’였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60주 년은 단지 한 악단의 역사를 기념하 는 것을 넘어, 아시아 내에 흐르던 각 민족음악의 현실과 공유된 흐름을 다시 읽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고, 또 한 이 흐름은 전통과 근대를 연결하 고, 지역과 세계를 이어주는 음악사 의 또 다른 지층이 될 것이다. 대만 중화국악단이 지나온 역사의 한 페이지에는 민족관현악단을 통한 중국·대만 간 ‘냉전’ 기류가 흐른다 면, 싱가포르 차이니즈 오케스트라 Singapore Chinese Orchestra에는 ‘화합’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 악단은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 의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한 국립 민 족악단이다. 1996년 정식 창단했으 나, 전사全史를 살펴보면 1968년으 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민협회People’s Association 소속으로 시작된 악단은 1975-1984년에 걸쳐 세미 프로화 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1975년 전문 연주자 6명을 영입해 반半프로 관현악단으로 전환하고, 1984년까 지 상근 연주자를5배 이상으로 늘렸 으며,1992년 ‘싱가포르 차이니즈 오 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면서 싱가 포르 대표 민족관현악단으로 자리매 김했다. 화합의 역사 싱가포르 를 품고 국악관현악단에 깃든 사회 배경 이후 1996년에 비영리 법인이 되며 큰 분기점을 이뤘는데, 관객 확장과 국제적 수준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행정·연주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재 정비했다. 특히 싱가포르 차이니즈 오케스트라는 오늘날 ‘난양南洋 스타 일’로 대변되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 다. 여기서 ‘난양’이란 1940-60년대 에 싱가포르에서 활동한 중국계 화 가들이 만든 미술 사조로, 동양의 회 화 전통과 서양 회화 기법을 결합해 탄생시킨 독특한 회화 양식을 일컫 는다. 전통악기와 서양식 기법이 어 우러진 싱가포르 차이니즈 오케스트 라는 이러한 두 문명의 만남을 표방 하며 싱가포르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음악화하고 있다. commemoration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