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페이지 내용 : 요·동요는 알겠는데 가요? 여기에 트로트라니, 장구의 영역이 이렇게 넓었던가. 보통 사물놀이 가락을 배 우지 않나. 이것이 지자체가 지원하는 문화강좌라니. 아하, 우리 동네 중국집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열심히 치는 트로트 장구는 여기에서 배운 것이 틀림없다! 무언가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는 이 문구는 웃음 너머로 어떤 깨달음을 얻게 했다. 혹시 국악이라 는 영역을 또는 시장을 한정 지어 생각한 건 아닐까? 트로트를 부르면서 치는 장구는 국악인가? 국악기 로 연주하는 록은 국악인가? 창극은 결국 뮤지컬이 아닌가. 그러니까 국악은 장르가 아니라 국악이라는 생태계 안에 궁중·풍류·민속예술을 포함한 고전음 악, 퓨전, 록, 팝, 인디밴드, 뮤지컬과 연극의 사이쯤 되는 창극·소리극·음악극 그리고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연희… 이미 다양한 음악 장르가 포진된 것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공연예술 가운데 국악 한국음악 의 공연 건수는 7.4%, 티켓 예매 수 비중은 2.7%에 이른다. 처참한 수준이다. 점유율이 10%도 채 안 되는 국악이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있다니 과 도한 세포 분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국악의 최신 트렌드를 논할 수 있을까 싶지만 흥미롭게도 그 어떤 분야보다 뜨겁고 활 발하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랄까. 양악처럼 쇼팽 같은 기존 레퍼토리를 소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연 극처럼 새로운 작품을 쏟아낸다고 관객의 사랑을 보장할 수 없다. 어떤 국악은 플레이리스트로 설명할 수 있지만, 어떤 국악은 퍼포먼스에 가깝다. 그만큼 다양한 표현력을 국악으로 폭발시키고 있다. 그 희한한 현 상을 포착해보자. 먼저 경연과 TV 매체를 통한 소리꾼의 부각이다. 광복 이후 국악사의 흐름을 기악이 주도한 적 이 있다. 이는 대학에서 엘리트 음악가를 키우는 과정에 잠시 주도했을 뿐 대중에게 가까운 이들은 원래 노 래였다. 19세기 판소리 8명창이나 일제 강점기 레코드판에도 남긴 김창룡·이동백·이화중선을 떠올려보 면 알 것이다. TV 경연 프로그램은 국악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미스트롯 의 송가인을 기점으로, 성공하려면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각성이 생겼다. 이후 국악인의 경연 프로그램 도전이 늘어났다. 그 정점은 풍류 대장 이다. 기존 퓨전음악 풍의 밴드음악이 점차 심사위원으로 대변되는 청중을 의식하고, K팝의 메커니 즘을 일부 수용하면서 놀라운 장면이 종종 등장했다. 자기 색깔을 찾아 음악을 하는 흐름이 포착됐고, 서도 밴드·구민지·최예림 같이 스스로 서사를 만드는 이들이 나타났다. 소리 수련으로 다져진 가창력과 극적 표현이 발휘될 기회가 그간 없었을 뿐 경연에서 이들의 활약은 당연했다. 사람들은 이들의 도전을 기꺼이 즐기고 국악인은 조금씩 대중의 감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창극의 활약은 대단하다. 국립창극단은 기존 레퍼토리의 변용에서부터 웹툰 원작의 정년이32
35페이지 내용 : 같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극으로 만들고, 새로운 주역을 지속적으로 발굴해내면서 관객 유입이 빠르게 이 뤄졌다. 뮤지컬 시장이 확장되면서 비슷한 유형의 공연예술인 창극에도 영향이 있는 것일까? 김준수·이 소연·유태평양·김수인 배우의 팬덤이 생기면서 공연장에 커피차가 등장하고, 특정 배우의 캐스팅을 보기 위한 티케팅이 치열해졌다. 창극뿐만 아니라 이자람·입과손스튜디오·박인혜의 소리극은 작품의 완성도 와 더불어 시대정신을 담아내며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기악의 흐름을 보자. 연주자의 창작이 주가 되는 팀들이 여전히 확장되고 있다. 진짜 국악이 무 엇인지를 고민하며 대학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민간 풍류, 잡가, 굿음악, 풍물을 익히고 창작의 소재로 삼는 팀들이 생겨났다. 또 철현금이나 양금 같은 특수악기도 급부상했다. 유학을 통해 음악 색깔을 찾는 이들도 생겼다. 국악 전공자의 유학은 음악인류학 전공이 주를 이 뤘지만, 최근 즉흥음악·재즈와 같이 연주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국악을 기반으로 하되 다양한 음악적 표 현을 가져오는 데 주목한 것이다. 해외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음악을 해체하거나 소리 의 표현력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강렬해지면서 이것이 과연 음악의 범주인가 싶은 퍼포먼스도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퓨전국악은 유튜브와 쇼츠로 유입됐다. 감상자를 겨냥해 만든 음악이다. 쇼츠는 조 회 수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가요나 탱고 또는 서유럽 음악을 편곡해 연주하고, 외모 관리가 필수 이며, 짧은 시간 내 사로잡을 킬링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유튜버 ‘야금야금’의 성공과 함께 젊은 국악인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소셜미디어로 소비되는 국악은 일상적이고 유입에 대한 문턱이 낮기에 다수와 접촉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통음악도 변화가 보인다. 지금까지 이들의 생존 방식은 연주 목적을 상실했으니, 음악만 떼어 무대화하거나 대학 커리큘럼 혹은 콩쿠르 연주곡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음악과 함께 문 화를 가져왔다. 공연화된 제례악인 국립국악원 나례 , 종묘제례악 , 사직제례악 은 과거 문화의 맥락 을 살피면서 음악의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악관현악도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6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국악관현악은 한때 존재에 대한 회의가 팽배했다. 그런데 지난 2023년과 2024년 열린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를 통해 젊은 지휘 자의 세대교체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곡의 난도가, 단원의 기량이 높아지면서 지휘자의 음악적 역량에 따라 전체 연주가 달라질 수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국악관현악이 국악의 한 분야로서 탄탄히 다져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올해 9월 열리는 영동세계국악엑스포에서 유수의 국악관현악 단이 한데 모인다고 하니 주목해보자. 이 땅의 음악환경이 모조리 갈아 엎어진지 벌써 한 세기에 가깝다. 존재의 위협을 느껴가며 국 악은 살아남기에 주력했다. 반면 K콘텐츠 시장이 세계로 확장하면서 오히려 아이돌은 정체성 발현을 위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