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페이지 내용 : 춤, 언어 이상의 언어 1952년 이스라엘 키부츠 미즈라에 서 태어난 나하린은 공동체 환경에 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안무가 이자 무용수였으며, 아버지는 심리 극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이러한 가 정 환경 속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움 직임과 신체 표현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춤을 시작한 것은 22세부터였다. 이는 전통적인 무용 수들의 경로와는 사뭇 다른 행보였 다. 뉴욕으로 건너가 마사 그레이엄 Martha Graham 무용단과 줄리아드 학 교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하며 다양한 스타일을 습득했다. 그는 뉴욕에서 전통적인 현대무용 기 법을 배우면서도 이를 절대적으로 따 르지 않았다. “기술적인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춤이 가진 에너지와 그 것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충격”이라 는 생각으로 오히려 기존 형식이 제 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만 의 움직임 언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은 이스라엘 의 문화적 정체성과 글로벌한 감각 이 절묘하게 융합된 결과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종 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움 직임 언어를 개발했다. 예컨대 작품 Minus 7 에서 유대교 전통 노래 ‘에하드 미 요데아Echad Mi Yodea’를 반 복하는 무용수들의 강렬한 몸짓은 유대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현실을 상징한다. 전쟁과 갈등 속에서 유년 기를 보낸 그의 춤은 자유롭고 역동 적이면서도, 때로는 거칠고 도발적 이다. 작품은 특정한 문화적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현대무용의 보편성을 확보하며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고 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방식은 한국 무용계에도 중요한 시 사점을 던진다. 또한 오하드 나하린은 기술적인 완벽 함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춤의 본 질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매우 자유로운 방식으로 창조하며 리듬을 찾고, 순간에 몰입한다. 그래서 춤은 일종의 명상적 성격을 띠면서도 동시에 땀을 흘리는 경험이 된다. ‘The Talk’,2022년 인터뷰 나하린은 ‘완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신화라고 주장한다. 많은 무 용수가 완벽을 목표로 하지만, 그는 완벽이 아닌 ‘훌륭함greatness’을 더 중 요하게 여긴다. 완벽할 필요 없이도 훌륭할 수 있다. 오히려 완벽한 것이 지루할 수도 있다. 특히 발레에서는 더욱 그렇다. 같은 동작을 하는 두 무용수를 보더라도, 한 명은 매혹적이지만 다른 한 명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하린은 무용수에게 “정신을 자유 롭게 하라, 그러면 당신의 척추가 따 라올 것이다Free your mind, and your spine will follow”, “에포트를 즐거움과 연결 해라Connect effort to pleasure” 또는 “둥둥 떠다녀라Float” 등의 언어적 표현을 던진다. 그는 춤이 단순한 공연 행위 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누군가와 함 께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도, 심지어 음악이 없는 상태에서도 춤은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춤은 단순히 공연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것만도 아니다. 혼자서도 춤출 수 있으며, 음악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모두가 춤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춤을 춰야 한다. 나하린은 가가를 개발하기 전, 움직 임의 질과 에너지의 흐름, 중력의 활 용, 경쾌함, 그리고 유머 감각을 탐구 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 는 기존 무용의 정형화된 형태나 완 벽한 기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다. 대신, 몸이 움직이는 방식과 움직 임이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경험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 매회 새 버전으로 거듭나는 작품 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이는 오하드 나 하린의 대표작 데카당스 는 여러 작품에서 주요 장면을 발췌해 재구 성한 공연으로, 안무가의 예술적 철 학과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 세계 유수의 발 레단에서도 꾸준히 공연된 데카당 스 는 매번 다른 버전으로 구성되며, 무용수와 안무적 해석에 따라 다양 한 색깔을 띤다. 파리 오페라 발레· 뒤셀도르프 발레 등에서도 공연되며 큰 사랑을 받았고, 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일 버전 역시 기존 형식에서 벗 어나 역동적인 안무로 소개될 예정 이다. “나는 무용수를 단순한 퍼포머가 아 니라 움직임을 탐구하는 예술가로 본다. 춤은 테크닉을 넘어선 감각의 경험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데카 당스 는 특정한 스토리라인이 없는 작품이다. 대신, 나하린의 여러 대표 작에서 선택된 장면들이 공연마다 새롭게 변형된다. 서울시발레단에선 클래식 발레 교 육을 받은 무용수들이 가가 테크닉 을 습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무대에 서 펼쳐낼 예정이다. 작품 특성상 안 무가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 고, 혁신적이면서도 다층적인 움직 임이 돋보인다. 특히 무대에 선 무용 수의 신체는 전통적인 남성성이나 42ARCHIVE
45페이지 내용 : 여성성을 강조하기보다 중성적인 이 미지를 강하게 내포하며, 동작은 근 육과 관절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작 용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즉흥성 을 만들어낸다. 또한, 각 무용수는 독 창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기존의 틀 을 깨뜨리며 대담하고 자유로운 움 직임과 탈경계적 신체 표현을 보이 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무용수들은 기존의 발레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감각적 이고 즉흥적인 요소를 결합한 움직 임을 통해 새로운 춤의 형태를 탐색 한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의 변주가 아니라, 무용이 신체와 감각의 경계 를 넓히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안무 가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전통적인 무용 형식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해 체되고 재조합될 수 있는지를 실험 한다. 최근 몇 년간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 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 련해 논란이 됐다. 바체바 댄스 컴퍼 니가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점을 문제 삼아 일부 지역과 무용단 이 그의 작품을 보이콧한 것. 이와 관 련해 그는 “창조적인 작업은 파괴와 정반대의 행위다. 우리는 전 세계적 으로 악의 세력에 맞서 창조성을 보 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취하는 군사적 행동을 비판했다. “전쟁 범죄라는 단 어는 법률적 용어이기에 사용하지 않겠지만 그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우리 자 신에게도 해를 끼칠 것이다.2023년 10월 9일 이후 이스라엘은 존재적 위협에 놓여 있지 않았다. 상황은 아 주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었다.” 안무 가는 무용이 정치적 논쟁을 초월해 인간 경험을 탐구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